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
정의연에 따르면 A씨는 18세 때 바느질 공장에 취업하기 위해 친구와 함께 중국으로 갔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수난을 겪었다.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사진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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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1945년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했고 2000년대 초반에야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과 상봉했다.
A씨는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뒤 수요시위와 해외 증언 등에 참여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정의연은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로 치러진다고 밝혔다.
이어 "여가부는 위안부 피해자가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세심히 살피고, 이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한 기념사업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A씨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8명으로 줄었다. 이들 모두 94∼96세로, 평균 연령은 95세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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