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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스벅 주문법이 3천8백억 개? 창업자 호소까지 불러온 뜻밖의 악순환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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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퍼민트] '대기업' 스타벅스는 '커피숍' 스타벅스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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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없지만, 한국인에게 필요한 뉴스"를 엄선해 전하는 외신 큐레이션 매체 '뉴스페퍼민트'입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스프에서 뉴욕타임스 칼럼을 번역하고, 그 배경과 맥락에 관한 자세한 해설을 함께 제공합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 한국 밖의 사건, 소식, 논의를 열심히 읽고 풀어 전달해 온 경험을 살려,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부지런히 글을 쓰겠습니다. (글 : 송인근 뉴스페퍼민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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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예능 토크쇼에 출연한 추신수 선수가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마이너리거 시절, 햄버거 가게에서 할 줄 아는 영어라곤 "넘버 원"밖에 없어서 몇 달을 줄곧 메뉴판 제일 위에 있던 1번 세트 메뉴만 시켜 먹었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추신수 선수에겐 영어가 물론 제일 큰 걸림돌이었겠지만, 사실 미국 식당이나 커피숍,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문하는 게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아서 곤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커피숍에서 그냥 아메리카노 한 잔 주문하려 해도 자꾸 뭔가를 물어봤습니다. 음료 사이즈나 매장에서 마시고 갈지 포장 주문인지 묻는 건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던 질문이지만, 우유를 넣을지 말지, 넣는다면 어떤 우유를 넣을지, 직접 넣을 수 있게 물을 조금만 받을지, 적립 쿠폰 있는지, (학교 근처 커피숍에 갈 때는) 혹시 이 학교 학생이라 할인 대상인지 등등 예상치 못한 질문이 끝없이 이어지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영어회화 실전 연습으로 안성맞춤이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커피 한 잔 마시러 와서 어딘가 취조를 받는 느낌도 들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유럽을 여행할 땐 커피를 주문하기가 훨씬 편했습니다. 영어보다 그 나라 말을 훨씬 못 하는데도 말이죠.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선 아침에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갓 내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무심히 내오는데, 미식가가 아니라 커피 맛을 잘 모르는 저도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면 '아, 이래서 이탈리아 친구들이 미국에서 커피를 사서 안 마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맛이야 주관적인 부분이니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주문 절차가 얼마나 간단하거나 반대로 복잡한지는 명확한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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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스 칼럼 보기 : 스타벅스가 고전하는 이유, 메뉴가 너무 복잡해서?


세계 최대의 커피숍 체인이자 음료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경영 실적이 부진하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는 와중에 매거진 잉크(Inc.)의 편집인 빌 사포리토가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고객들이 점점 스타벅스를 외면하는 이유 중 하나로 사포리토는 너무 복잡한 주문 절차를 꼽았습니다.

칼럼에도 나오지만,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에게 사람들이 (집과 사무실 다음으로)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하며 한잔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라는 영감을 준 건 바로 이탈리아의 커피 바였습니다. 오전에는 커피를 팔고, 점심 시간 이후에는 간단한 스낵과 함께 맥주도 팔며, 밤에는 여러 술을 파는 가게를 유럽의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있는데, 슐츠는 그런 커피 바에서 영감을 얻어 스타벅스를 창업했습니다.

시애틀의 파이크 플레이스 시장 구석에 있는 스타벅스 1호점은 지금도 초기의 소탈한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설의 시작"이 어떤 모습일지 잔뜩 기대하고 온 관광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만큼 별것 없습니다. (3년 전에 한 번 가본 제 기억에는 그랬습니다.) 겉보기엔 화려하지 않아도 커피와 음료의 맛은 아마도 훌륭했을 테고,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갈 수 있는, 슐츠가 구상한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냈을 겁니다. 그러던 스타벅스의 정체성은 시애틀의 유명한 커피숍에서 점점 미국을 대표하는 식문화 아이콘, 요식업계 대표 브랜드로 변해 갑니다. 투자가 몰리면서 주가가 올랐고, 기업 가치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스타벅스는 어느덧 커피 맛과 분위기보다 주가를 더 신경 써야 하는 '대기업'이 됐습니다.

"다양한 선택지"와 초심 사이 어딘가



깐깐한 월스트리트 투자자들과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하며 성장을 이어 온 '대기업 스타벅스'의 스토리는 분명 손에 꼽을 만한 성공 사례 중 하나입니다. 시애틀의 작은 "동네 커피 맛집"에 그칠 수도 있던 스타벅스를 지금의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내는 데 주식시장은 커다란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성공담은 어디까지나 매출과 수익, 성장세가 꺾이지 않을 때까지만 유효합니다. 시장경제는 한편으로 냉엄하기 짝이 없어서 경쟁에서 뒤처지면 투자자들은 금방 다른 투자처를 찾아 떠납니다.

스타벅스의 경영 실적에 빨간불이 켜진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스타벅스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명예회장 하워드 슐츠가 이번에도 초심을 되찾자고 절절히 호소했던 게 6개월 전의 일입니다.

역설적으로 고객들이 스타벅스를 점점 외면하기 시작한 이유는 대개 최근 스타벅스의 성장을 이끈 요인들입니다. 출근길에 앱으로 커피나 음료를 주문해 놓으면 사무실 근처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에 도착했을 때 선반 위에 주문한 음료가 포장돼 있는 건 (모바일 주문이 이미 보편화된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참신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은 "제3의 장소"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매출은 올려줄지 몰라도 스타벅스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차별화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죠.

여기에 칼럼에서 사포리토가 지적한 너무 복잡한 주문 절차가 끝내 곳곳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킵니다. 80대20 법칙이든, 마케팅 원론이든 고객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하면 결국에 좋다는 이론은 많지만,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세상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과유불급의 원칙입니다. 커피에 우유를 타 만드는 라떼 음료를 주문할 방법이 (스타벅스가 인정한 17만 개보다 훨씬 많은) 3,830억 가지나 된다는 상황은 말 그대로 과유불급입니다.

음료 한 잔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고, 자연히 대기 시간도 길어지니, 고객들은 불만이 쌓이다 못해 스타벅스를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당장 저처럼 커피 맛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 사람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맞춤형 음료 주문에 한 번 지치고, 기껏 주문해 놓고 나서는 또 음료를 받을 때까지 한참 동안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못 견디고 다른 커피숍을 찾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매출과 비용 절감, 점포 수 등 성장세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장기업 스타벅스의 한계가 한 가지 더 드러납니다. 바로 바리스타를 비롯한 직원들의 근무시간을 알고리듬으로 조율, 배정하는 시스템인데, 주문이 복잡해진 만큼 사람을 더 써서 대기 시간을 줄이는 방식을 웬만해선 시도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인건비를 줄여 단기적으로 재무제표를 개선하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브랜드를 떠받치는 토대를 장기적으로 갉아먹는 자충수이기도 합니다. (사포리토가 칼럼에서 예로 든 파타고니아나 인 앤 아웃 버거는 폭발적인 성장을 포기한 대신 브랜드 가치를 지켜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주문이 밀리면 음료를 받기 위해 오래 기다린 손님들의 표정이 아무래도 밝기 어렵습니다. 바리스타들도 자연히 손님을 친절하게 응대하기 어려워집니다. 서로 얼굴 붉히고 실망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사람을 더 뽑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선택지는 주주의 압박에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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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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