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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기고]해외서 인정 못 받는 ‘자발적 탄소배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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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탄소배출권’은 단체 또는 개인이 법적 의무 없이 탄소배출을 상쇄하기 위해 자발적 탄소시장(VCM·Voluntary Carbon Market)에서 구매한 탄소배출 감축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엔과 각국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사용한 배출량 감소 주장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탄소시장은 정부나 유엔 같은 국제적 기구가 감독·통제·운영하는 규제시장과 아무런 감독·규제가 없는 비규제시장으로 나뉜다. 규제시장인 탄소배출권제도를 유럽연합(EU)과 한국은 중앙정부가 운영한다.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권거래제도는 두 종류의 배출 감축량을 인정한다. 기업의 과거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정부가 결정해 기업에 분배하는 ‘할당배출량’과 정부가 인증하는 ‘제3자 탄소감축분’을 구매해 확보하는 ‘상쇄배출량’이다. ‘제3자 탄소감축분’은 탄소배출 기업이 아닌 제3자가 청정에너지처럼 탄소배출을 방지 또는 감축해 생성되며, 엄격한 검증 및 인증 절차를 거친다. 자발적 탄소시장은 비규제시장으로 정부가 발행하는 할당배출량이 없기에 정부 인증 없는 ‘상쇄배출량’만 거래하며 정부나 국제기관 대신 베라(Verra) 등 사설기관이 상쇄배출량을 인증하고 발행한다.

정부 규제 배출권거래제에선 제3자 상쇄배출량을 구매자의 배출 감축분으로 인정하지만 자발적 탄소배출권은 구매자의 감축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환경개선 사업을 타 업체에 대행시키는 경우, 이를 구매해 자사의 ESG 활동으로 간주할 순 있지만, 다른 금전적 혜택은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즉, 자발적 행동에 경제적 이익이 주어진다면 이는 자발적이 아니다. 정확히는 ‘자발적 탄소배출권’이 아닌 ‘제3자 탄소배출 감축량’인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선 이를 배출권 즉 어떤 권리가 있는 양 잘못 이해하고 표기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작년 9월 자체 조사 결과 현재 거래되는 자발적 탄소의 78%는 쓰레기이고 16%는 문제가 있으며, 나머지 6%도 효과가 확실치 않다고 보도했다. 또한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을 인용, 자발적 탄소시장의 가장 큰 공급원인 열대산림 인증배출 감축량의 90%는 ‘아무 가치가 없다’고 했다. 구찌는 자발적 탄소 구매로 탄소중립을 했다고 발표했다가 반발이 심해지자 웹사이트에서 해당 주장을 삭제했다. 델타항공도 같은 방법으로 자사 배출 감축을 주장하다 10억달러 사기 소송을 당했다. 스위스 정부는 자국에 본부가 있는 FIFA가 카타르 월드컵이 자발적 탄소 구매로 탄소중립을 이룩했다고 발표하자 이를 연방법 위반 사기로 간주하고 제재를 가했다. 이에 자발적 탄소를 사용하던 구글은 더 이상 구매도 사용도 하지 않는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유럽의회는 기업들이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자사 배출량으로 변환시켜 자사 제품에 ‘탄소중립’ 딱지를 붙여 친환경 제품처럼 홍보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을 불법화하는 법안을 지난 1월 통과시켰다. 미 의회도 이를 불법화하는 법령을 준비 중이다.

이는 한국 기업에 중요 의미를 가진다. EU는 수입품 대상으로 탄소관세(CBAM)를 도입했다. 당연히 자발적 탄소로 배출 감축은 안 되며, 한국 정부의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받은 공식 감축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EU의 탄소배출권제도는 상쇄탄소를 인정치 않고 할당배출만 인정한다. 따라서 상쇄배출을 인정하는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권거래제로 배출 감축을 획득한 한국 기업도 EU의 새 규정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유럽 탄소업체는 무용지물이 돼가는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국내 기업에 판매하고 있다. 일부 국내 대기업·증권사가 국제 흐름과 신규 법안을 파악 못하고, 자발적 탄소를 이용해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며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탄소중립 실패는 용인될지언정, 의도적 사기행위인 그린워싱은 EU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절대로 용서 안 한다.

경향신문

백광열 전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


백광열 전 연세대 기후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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