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입구에서 휠체어를 탄 고령의 환자가 한 시간 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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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요양보호사 등이 속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9일부터 전국 병원 61곳에서 2만여 명이 참여하는 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가까스로 유지되던 의료 시스템은 간호사까지 떠나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응급실·수술실 등 필수의료 인력은 남는다지만 검사를 담당하는 의료기사나 입원 병동을 지키는 간호사가 없는데 평소처럼 응급 환자를 받을 순 없다.
전공의가 떠나고 탈진한 전문의들의 사직이 이어지자 ‘개점휴업’ 상태인 응급실이 늘고 있다. 15일 충북 진천에선 임신부가 응급실을 찾다가 119구급차 안에서 출산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쓰러진 40대 응급환자가 병원 14곳을 돌다가 119구급차에서 사망했다. 이들을 치료할 의사가 없어 병원이 환자 수용을 거부해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근이 버텨오던 간호사 등까지 병원을 떠난다고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며 임금 인상과 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간 간호사들은 전공의 업무를 떠안은 채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왔다. 그런데도 병원 경영난이 닥치자 무급 휴가·휴직 대상이 되는 등 의정 갈등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체계적인 교육 없이 진료지원(PA) 간호사로 투입돼 불법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의정 갈등 속에 묵묵히 의료 현장을 지켜 온 의료 인력의 처우 개선은 그동안 의료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간호사들이 “필요할 때만 쓰고 버려지는 티슈 노동자인가”라며 울분을 토하겠나. 여야는 간호사 처우 개선, PA 간호사 합법화 등을 담은 간호법의 8월 처리를 합의했다.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등 각 직역 간 갈등이 껄끄럽다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할 게 아니다. 또 정부는 의대 증원 이슈에만 매달려 직역 간 이해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노조도 파업만큼은 자중하길 바란다. 이러다간 정말 병원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는 환자가 속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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