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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30여년 간 함께 산 삼촌 둔기 살해 '무죄'...재판부 판단 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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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제삼자의 범행 가능성 무시 못해…"

"직접적인 증거도 없어" 무죄

수십 년 동안 자신을 돌봐준 작은아버지를 살해한 60대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고권홍)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선고공판에서 "피고인의 범행을 의심할 여지는 있으나 뒷받침하는 직접 증거가 없고 범행 방법 등 본질적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세계일보

수원지법.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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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월 말~2월 초 경기 수원시 주택에서 함께 사는 삼촌 70대 B씨를 둔기로 폭행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 관련 제삼자의 범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은 유전자에 대한 감정만 이뤄졌을 뿐 현장에 물건이 남아있는 유무 등 제삼자에 대해 정밀하게 관찰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공동현관문은 누구나 출입 가능한 장소인데 이 사건 범행 현장에 출입한 제삼자 출입 여부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만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 지인이 방문한 적 있다고 했고 피해자의 아들은 과거 사업을 하면서 민사소송을 많이 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집에서도 소송서류가 발견됐다"며 "피해자와 원한 관계에 있는 제삼자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피해자의 사망원인에 밝혀지지 않은 제삼자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단정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도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십자드라이버가 범행도구면 피고인이 이를 잡는 것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어 피고인의 DNA가 검출돼야 하지만 손잡이 표면에서 피해자 DNA만 검출돼 실제 범행 도구인지 확신이 어렵다"며 "또 다른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커피포트에서는 피해자의 DNA만 검출되고 혈흔반응도 음성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이 조현병을 앓으면서 피해자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이 드러나 과거 피해자를 삽으로 내리쳐 상해를 입히거나 목을 조르려고 시도하기도 했다”면서도 “이는 조현병으로 인한 공격적인 성향 내지 양상에 불과하다”며 "살인 범행을 인정할 만한 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의 범행 발생 전후 자신의 행동과 행적에 대해 일관성 없는 진술을 하고 있고 피해자의 아들이 주거지에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우나 이 같은 사정만으로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A씨의 범행은 지난 2월7일 B씨의 아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드러났다.

2월 7일 오후 B씨 아들로부터 "집 안에서 휴대전화 벨 소리는 들리는 데 아버지가 연락받지 않는다"는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소방과 공동대응해 잠긴 문을 강제로 열었다.

이불에 쌓인 채 베란다에 방치된 B씨 시신을 발견되자 경찰은 곧바로 자신의 방에 있던 A씨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들은 B씨 명의의 임대주택에서 30여년간 함께 살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A씨 측은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7세 정도의 지능인 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인 점을 참작해달라”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고예은 온라인 뉴스 기자 jolichio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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