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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의사들 자중지란 하는 사이… 간호계 숙원 '간호법' 통과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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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이달 내 간호법 처리 방침
PA간호사 제도화 필요성 동의
상임위서 법안 막바지 조율 중
간호법 책임 놓고 의사계 내분
한국일보

지난 3월 27일 서울 강서구 한 종합병원 인공신장실에서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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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은 민생법안을 이달 안에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간호계 숙원인 간호법 제정이 가시화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한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진료지원(PA)간호사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다. 줄곧 간호법을 반대해 온 의사단체는 법안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놓고 내부 분란에 휩싸였다.

1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간호법안 세부 내용을 놓고 막바지 조율을 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발의한 ‘간호사 등에 관한 법률안’, 더불어민주당 강선우·이수진 의원,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간호법안’ 등 총 4건이 올라와 있다.

간호법은 의사 위주인 의료법에 묶여 있던 간호사의 지위와 권리를 명시하고, PA간호사의 업무 범위,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 개선에 관한 국가 책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의료공백이 장기화되면서 전공의 업무 일부를 대신하는 PA간호사 제도화는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2월 말부터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현장에서 활동 중인 PA간호사 수는 1만3,00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여야 모두 PA간호사 제도화를 포함한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어 지난해 21대 국회에서처럼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도 대통령 거부권에 가로막혀 좌초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 업무 영역을 학교, 산업현장, 재가, 사회복지시설 등으로 구체화해 재의 사유였던 간호사 단독 개원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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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폐원을 앞둔 5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한 간호사들이 손팻말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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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PA간호사 자격, 업무 종류, 교육 과정 등을 어떻게 법에 담을지를 놓고 여야 간 견해 차이가 있어 정부가 수정 의견을 준비하고 있다. 각 법안은 PA간호사가 수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거나(강선우 의원안) 의사의 포괄적 지도 또는 위임에 따르도록(추경호 의원안) 했다. 의료현장에선 의사와 간호사 간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지점이 있고 동일한 의료행위도 판단하기에 따라 합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법을 통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지난달 22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도 “업무를 하나하나 열거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대통령령이나 포괄적 위임으로 규정하면 현실적으로 의료소송이 빈번한 상황에서 책임이 간호사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업무 행위나 종류를 법률로 정하면 향후 법안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복지부령에 위임하되, 시행 규칙에 담길 세부 내용을 한층 구체화해 조만간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법안심사소위는 21, 22일 열린다. 정부는 소위를 앞두고 국회와 사전 실무 협의를 진행해 법안이 이달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대다수 보건의료단체는 찬성이거나 조건부 찬성 의견을 밝혀 법안의 앞날은 어느 때보다 밝다. 지난해 간호법 저지에 앞장섰던 대한간호조무사협회도 간호법을 통해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현행 특성화고 졸업자와 간호조무사학원 이수자에서 전문대 간호조무과 졸업자까지 넓힌 점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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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택(왼쪽 세 번째)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의료현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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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안팎에선 의협 혼자서 간호법 제정 움직임에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의협이 의사계 투쟁 구심점으로서 위상을 상실한 데다 간호법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여론도 부담스럽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12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찾아가 “간호법은 의료인 간 업무 범위 구분 등에 문제가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으나, 추 원내대표는 “진료 공백에 따라 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의료계 목소리를 경청하겠다”고 답했다.

간호법을 막지 못한 책임을 두고 임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갈등도 불거졌다. 10일 전국 시도의사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던 박 위원장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의협 업무 보고에 간호법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며 비판했고, 임 회장은 “간호법 등 현안에 대해 설명했고 시도의사회장님들의 여러 조언도 듣고 협력을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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