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참 이상하다.
지난 4월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한 총선 패배 원인 분석 토론회에서 김종혁 당 조직부총장(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의 PI가 완전히 망했다"며 "대통령이 격노한다고 나가면 그걸 보는 국민이 행복하겠나"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패배의 제 1요인이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데에는, 이른바 '친윤' 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다.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정체성)는 정치인, 기업CEO 등 인물에 초점을 맞춰 회사나 단체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긍정적인 최고 지도자 이미지를 통해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비자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켜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 유명 CEO들은 자신의 캐릭터나 메시지, 활동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구축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스스로 평생 구축한 PI를 통해 미국 대통령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종합 엔터테이너다. '리더'들의 이미지가 마케팅이 되고 그 마케팅은 조직 홍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국 투자자의 77.7%가 CEO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악의 PI 실패 사례는 이마트의 오너 정용진의 '멸공' PI가 아닐까 싶다. 유통업계의 큰손인 그가 감자밭을 방문하거나 백종원과 같은 셀럽들과 관계를 과시할 땐 호감도가 상승할 수 있지만, 갑자기 SNS로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면 PI를 담당하는 참모들은 물론, 이마트 종사자들이나 주주들, 중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신세계그룹 담당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제대로 된 참모라면 옆에서 말렸겠지만,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거나, 본인 스타일이 '안하무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완전히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현대 사회에서 대중 정치인은 그 메시지와 상징성의 총합으로 자신이 이끄는 정당이나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홍보한다. PI 전략에서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것은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 이미지를 보완하는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넘친다 싶으면 덜어내고, 장점이 묻힌다 싶으면 보강해야 한다. 일관성'도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PI가 완전히 망했다고 한다. '윤석열'이라는 리더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가 자주 쓰는 말, 손짓 하나, 옷차림, 걸음걸이, 먹는 음식, 시선처리, 목소리, 사소한 습관들은 메시지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행동이다. 리더는 어떤 결정과 행동을 함으로써 메시지를 전하고 그것을 유권자들의 동의와 지지로 이어지도록 만든다. 특히 참모들은 리더의 PI 구축을 위해 방문 장소(장소에 담긴 메시지)와 그 장소에 적합한 메시지를 고려해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부각시킬지, 어떤 메시지를 감출지 정교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완전히 망한' PI 마케팅 사례는 셀 수가 없다. '격노'의 아이콘이랄지, '술꾼'의 이미지랄지 하는 것들이다. 특히 유수의 언론인들이 점잖은 칼럼으로 수차례 '술을 멀리하라' 조언해도 듣지 않고 여당 행사장에서 맥주를 돌리면서 스스로 강화하는 '술꾼'의 이미지는 국정 운영 모든 사안에 '밈'으로 들러붙는 고약한 PI 실패 사례로 꼽힌다.
이런 PI는 그나마 개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이상하긴 해도 우리 주변에 있는 친근(?)한 이미지들이어서다. 그런데 개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PI들이 있다. 이른바 '내로남불의 덫'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들인데, 대중은 공정하다 믿은 리더가 공정하지 않다는 걸 발견했을 때 두 배로 실망하게 된다. 이럴 땐 리더도, 대중도 '인지 부조화' 현상에 빠져든다.
PI 전략은 정교해야 한다. 기계처럼 '긍정적 이미지'를 쫓다간 또 망할 수가 있다. 소위 '미담으로 망하는' 사례다. 이를테면 윤석열 검사가 '국정원 댓글 사건'의 부당한 수사 개입에 항의하고,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때 일선 검찰청을 방문해 검사들을 격려하면 '정의와 공정'의 PI가 강화되지만, '채상병 사건'의 부당한 수사 개입의 주요 용의자가 된 후 해병대 부대를 찾아 사진을 찍으면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라는 반응을 불러온다. 이를테면 이명박이 '가훈이 정직'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나, 박근혜가 최순실과의 우정을 '순수한 마음'으로 포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다음 사례는 '미담으로 망하는' 전형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대통령실은 7일 "尹 대통령, 진해 해군기지서 휴가보내며 해군·해병 장병 격려"라는 제목의 브리핑 자료를 배포했다.
▲여름휴가를 맞아 경남 진해 해군기지에서 머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후 진해기지사령부체육관에서 농구 시합 중인 장병들이 보는 가운데 자유투를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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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오늘(7일) 오후 해군 및 해병대 장병들과 농구, 족구 등 다양한 체육 활동을 하며 단합을 다졌습니다. 대통령이 진해기지사령부 체육관에 들어서자 해군 장병 30여 명이 "필승"을 외치며 환영했고, 대통령은 장병 한명 한명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고가 많다"고 격려했습니다.
대통령의 점프볼로 장병들의 농구 경기가 시작됐고, 경기를 관람하던 대통령은 경기 쉬는 시간 동안 자유투 라인에서 슛에 도전했습니다. 대통령이 첫 슛에 실패하자 장병들은 "한번 더!"를 외쳤고, 그 응원에 힘입어 다시 한번 슛에 도전했습니다. 대통령이 세 번째에 슛을 성공한 데 이어, 5번째, 마지막인 6번째 슛도 연달아 성공하자 다 함께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습니다."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장이 해트트릭을 기록하시었다'는 느낌의 이런 브리핑 자료는 참모들의 '과잉 충성'의 발로인지 모르겠으나, 대통령의 PI 구축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예시 자료로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런데 브리핑 자료의 다음 부분에서는 '이상함'을 넘어 '기괴함'을 느끼게 된다.
"(해군 관계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해병대 장교는 "지난 20년 군 생활 동안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제복 입은 군인을 기억하고 대우해 준 점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나가자, 해병대. 나가자, 대한민국!" 구호를 외쳤습니다."
해군 관계자들과 식사를 하는데 해병대가 빠질 순 없겠다. 하지만 맥락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자신이 수사 대상으로 적시된 특검법안에 두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대통령은 단 한마디도 해명한 적이 없다. 일부 예비역해병대 전우들은 대통령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채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은 전시에서나 볼 법한 '항명수괴죄(후에 항명죄)'로 입건된 상황이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의 진상 규명을 원하는 대략 70% 이상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 브리핑 자료는 '기괴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해병 대원 사망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이런 내용을 굳이 브리핑 자료에 포함시킨 것은 몇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겠다.
표층과 심층의 문제다. 표층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과 무관하다. 고로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장면을 브리핑에서 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심층에서 많은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대통령이 해병대원들과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을 보는 건 곤욕이다. 대통령이 즐겨 입는 해군 마크 티셔츠는 평시엔 '미담거리'지만, '채상병 사건'의 불편한 맥락이 개입된 현재엔 누군가에게 모욕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해병대만 빼고 해군 인사들만 격려할 순 없다. 딜레마다.
애초에 대통령이 '격노'를 부인하지 않고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솔직히 말했다면, PI가 꼬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불쾌한 상황이 계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은 공식적으로 윤 대통령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군과 관련된 대통령의 PI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대통령은 채상병 사건에 대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배려할 필요따위도 없다. 대통령의 PI를 담당하는 참모들이 "그래도 해병대원들은 만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건의할 수도 없다. 참모들도 극한 직업이다.
대통령과 '세트'로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영부인의 PI는 더욱 심각한 상태다. 디올백을 받는 장면을 전국민이 지켜본 상황에서, 영부인은 '바이바이 플래스틱백'이라 적힌 에코백을 계속 메고 다녀야만 하는 운명에 빠졌다. 에코백을 맨 장면이 노출될 수록 사람들은 '디올백'을 떠올리며 '이상하다'는 심성에 사로잡히겠지만, '디올백'을 받은 행위가 문제 없다는 '논리적 일관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영부인은 공식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어떤 '빽'이든 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에코백'을 들지 않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궁금해 할 것이다. 이렇게 영부인은 영원히 '가방'을 들어야 하는 운명에 빠지게 되고, 그걸 보는 사람들은 점점 불쾌감이 커지는 운명에 빠져드는 것이다.
요컨대 군 통수권자가 해병대를 만나는 게 어색하다고 해도, 영부인이 평범한 가방을 는 게 어색하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그걸 안할 수 없게 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럴수록 대통령과 영부인의 PI는 더 '망하는' 악순환의 길로 간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대통령이 해병대를 격려하는 모습을 매번 봐야 하고, 영부인이 에코백을 메는 모습을 매번 봐야만 한다. 이를테면 윤 대통령은 '바이든'이라고 하지 않고 '날리면'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안고 가야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대중의 '기괴한 심성'도 아마 영원히 평행선을 이루며 갈 것이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일부러 사람들을 괴롭히려 하는 '악인'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 부부는 참으로 이상하게 보인다. 그 이상함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간혹 '언캐니(uncanny, 섬뜩함)'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익숙한 지식과 상식에 의한 인식의 국경을 넘어서 갑자기 낯선 영역에 도달할 때, 우린 섬뜩함을 느끼곤 한다. 이런 건 PI로 해결할 수 없다. 진실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만이 유일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린 영원히 '해병대'와 '명품백'의 잔상에 갇혀 지내야 한다. 마치 윤석열 부부가 있는 채팅방에 강제 초청됐는데, 아무도 모르게 2년 째 관전하다보니, 눈치가 보여 막상 채팅방을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처한 묘한 기분이다. 다행히 카카오톡엔 '조용히 나가기' 버튼이 있지만, 현실에는 그런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다.
▲ 윤석열(오른쪽)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10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방문차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김건희 영부인의 손에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이라고 적힌 에코백이 들려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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