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의원들에게 둘러싸인 이란의 새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빨간색 원 오른쪽)과 이스마일 하니야(빨간색 원)가 맞잡은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불과 몇 시간 후 하니야는 이스라엘의 표적 공격으로 사망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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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피살됐다. 가자전쟁 휴전안 등 중요한 정치적 결정권을 쥔 그가 이란 대통령 취임식 날에 수도 한복판에서 살해되면서 이란 민심이 들끓고 있다. 분노한 이슬람 무장세력이 이스라엘과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중동 역내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하마스는 31일(현지시간) "하니야가 테헤란에 있는 거처에서 시오니스트의 습격으로 피살됐다. 심각한 도발 행위로 보복이 불가피하다"며 분노했다. 같은 날 이란 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을 내고 "하니야가 오늘 새벽 테헤란에서 경호원 1명과 함께 순교했다"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하니야는 이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뒤 거주지에서 이스라엘의 급습을 받아 살해됐다. 이스라엘은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지만, 이처럼 무리한 암살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지도부가 급박했다는 증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란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직접 국가안보회의를 긴급 소집한 뒤 성명을 발표했다. 하메네이는 "범죄자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우리의 손님을 순교하게 했다"며 "그들이 가혹한 징벌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란 이슬람공화국 영토에서 발생한 쓰라린 사건과 관련해 피의 값을 치르는 것을 우리 의무로 여겨야 한다"면서 강력한 보복을 지시했다.
그간 하메네이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해 '적대적 맞대응'을 수시로 언급해왔다. 이날 '보복이 의무'라는 발언은 과거보다 한층 수위가 높아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엑스(X) 계정에 전날 집무실에서 하니야를 반갑게 접견하는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엑스에 "팔레스타인 저항의 용감한 지도자 하니야의 순교를 애도한다"며 "테러리스트 점령자들이 비겁한 행동을 후회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란 이슬람공화국은 영토 보전과 존엄, 명예,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날 자신의 취임식에서 하니야를 만나 손을 붙잡은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하니야는 전날부터 취임식 참석차 하마스,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 등 반서방·반이스라엘 성향의 친이란 무장세력 '저항의 축' 관계자들과 테헤란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개별적으로 회담한 데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인 하메네이와도 만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하니야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며 "테헤란에서 벌어진 하니야의 순교는 이란,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사이의 깊고 뗄 수 없는 결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IRGC 고위급 인사는 "이는 사실상 이란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니야는 늘 이스라엘의 '제거 1순위 표적'이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기습을 지휘한 야히아 신와르와 하마스 군사령관 무함마드 다이프, 정치국 부국장 살레흐 알아루리 등과 함께 이스라엘의 암살 명단에 올라 있었지만 이날 하니야 암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미국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 대변인은 관련 보도를 봤다면서도 추가 언급은 하지 않았다.
미국은 하니야의 암살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싱가포르 CNA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은 암살을 인지하고 있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며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휴전 협상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을 방문 중인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회견에서 질문이 나오자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다. 외교를 위한 공간과 기회는 항상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이날 CNN방송, 로이터통신 등은 하니야를 제거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전문가들로부터 지난해 10월 7일 가자전쟁 발발 이후 '가장 중요한 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매슈 레빗 선임연구원은 CNN방송에 "이스라엘은 테러 집단 수장들이 피난처를 제공하는 나라에서 지내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하마스와 가까운 분석가 이브라힘 마드훈은 NYT에 하마스가 완전히 와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하마스 창설자 아메드 야신과 압델 아지즈 알란티시가 이스라엘에 암살당하고도 하마스는 살아남았다며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레드라인(저지선)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전날 베이루트를 공습해 헤즈볼라 고위 군사령관 푸아드 슈크르도 사살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단 몇 시간 만에 이란 한복판까지 타격해 하니야를 암살했다.
[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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