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장 "야권 측, 부정선거 믿음 굳건…정부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듯"
한인 사업가 "차베스 동상까지 부술 줄은 몰랐다…'아랍의 봄' 보는 느낌"
바리케이드 치우는 베네수엘라 경찰 |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시간) 개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당선 발표를 한 것 자체가 잘 짜인 각본처럼 흘러갔다는 게 내 주변 현지인들의 중론이다."(정두환 베네수엘라 한인회장)
"일부 지역에서 우고 차베스 동상을 끌어 내려 부수는 장면을 확인하고 놀랐다. 예전에 '아랍의 봄' 시기에 뉴스를 통해서나 보던 모습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베네수엘라 사업가 문익환 대표)
'대선 부정 개표' 논란으로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가 격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현지 한인 교민들은 30일(현지시간) "경제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으로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두환 베네수엘라 한인회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좌파) 정부 복지 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저소득층 빈민 주민들이 3선 확정을 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비판에 앞장서는 양상"이라며 "이는 최근 수년간 목도했던 베네수엘라 시위와는 딴판"이라고 지적했다.
14년째 현지에서 사업을 해온 문익환 대표는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지난 28일 대선일 이후 도심 쇼핑몰의 문은 닫혀 있고 일부 마트 앞에는 물건을 사두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며, 몇 주간 사회 불안은 점증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려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한인 14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X자 표시된 '마두로 대통령' 벽글씨 |
다음은 정두환 한인회장(이하 정 회장), 사업가 문익환 대표(이하 문 대표)와의 일문일답.
-- 사망자가 속출하는 등 시위가 격화하는 양상인데, 자택이나 사업장 주변 상황은 어떤가.
▲ (문 대표) 시위가 벌어지는 지역 외에는 다행히 한산한 편이다. 교민 분들도 그렇고 사업장을 가진 현지인들 역시 재택근무 또는 단축 근무를 하며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일부 지방에서는 혹시나 모를 약탈 행위에 대비해 장사하시는 교민 분들이 며칠간 문을 닫기로 했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대형 쇼핑몰은 문을 닫아둔 상태이고, 영업 중인 슈퍼에는 사람들이 먹거리 위주로 잔뜩 장을 보고 있다. 제가 자주 가는 마트에는 보통 계산대 앞에 많아야 4∼5명이 줄을 서는데, 오늘 잠깐 들렀을 때 100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이 몰린 것을 봤다.
'대선 개표 부정' 반발 시위에 운집한 민주야권 후보와 지지자들 |
-- 야권 측의 부정 선거 주장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시위 양상은.
▲ (정 회장) 현지 주민들과 이야기해 보면 개표 과정에서 잘못된 행위가 일어났다는 믿음이 전반적으로 확고하게 굳어져 가는 것 같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실시간) 개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당선 발표를 한 것 자체가 잘 짜인 각본처럼 흘러갔다는 게 내 주변 현지인들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은 현 정부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이번 움직임이 그 전의 반정부 시위 양태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 이후인 2014년(40여명 사망)과 2018년 대선 전인 2017년(120여명)에도 부정·불공정 선거 또는 불법 유세를 문제 삼으며 현 집권당에 반발하는 시위가 들끓었는데, 당시엔 중산층을 중심으로 결집했다.
그러나 이번 시위의 경우엔 마두로 정부 복지 정책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빈민가 주민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문 대표) 저는 일부 지역에서 우고 차베스 동상을 끌어 내려 부수는 장면을 확인하고 놀랐다. 제가 14년째 베네수엘라에서 살면서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 예전에 '아랍의 봄' 시기에 뉴스를 통해서나 보던 모습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간 마두로 대통령에 대한 불만 제기는 여러 경로로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좌파의 아이콘인) 차베스(전 대통령)까지는 건드린 적이 없었다. 이게 이번 시위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방증이라고 본다.
부서져 불탄 베네수엘라 차베스 동상 |
-- 현 정권의 수혜자라고 하는 저소득층이 시위에 적극 나선 배경은 뭔가.
▲ (문 대표) 단연 경제난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마두로 집권 시작(2013년) 직후 국제유가 폭락과 맞물려 직격탄을 맞았고, 2019년에는 현지 통화 가치까지 폭락하면서 경제 위기가 더 심화했다.
결국 실생활에서도 달러 수요가 증대하면서 물가는 폭등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주민들 호주머니는 더 가벼워졌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저소득층 사이에서도 자리 잡은 상태에서, 개표 부정 논란까지 터지니, 다들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 주변에서는 외국에 살고 있는 가족 구성원의 송금(달러)에 크게 의존하는 현지인이 있는데, 그는 (마두로 당선) 발표를 듣고 울었다고 한다. 가족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번 대선이 정권 교체의 마지막 기회라고 봤다는 뜻이다.
'마두로가 대통령' 거리 행진 나온 여당 지지자들 |
-- 마두로 정부는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전망하나.
▲ (정 회장) 두고 봐야겠지만, 군과 경찰이 (시위대 편으로) 돌아서지 않을 경우 시위의 불꽃은 사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최대 변수는 군과 경찰의 태도라고 본다. 지휘부는 당연히 마두로 정부와 운명을 같이 한다고 판단하겠지만, 소장파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를 낼지가 관건이다. (군·경이) 현재 태세를 계속 유지하며 마두로 충성 모드로 간다면, 민주 야권 측에서도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문 대표) '콜렉티보'(극좌파 무장 세력) 동원 여부도 (주의깊게) 봐야 한다. 2017년 반정부 시위 당시 콜렉티보가 저소득층 지역에 신속하게 배치돼, (주민들이) 더 움직이지 못했다는 현지 언론 분석이 있었다. 이번에도 콜렉티보가 활동한다면 사상자가 더 발생하는 것을 비롯해 분위기는 더 험악해질 수도 있다.
-- 현지 교민 사회 분위기는.
▲ (정 회장) 긴장감은 있지만 비교적 차분한 편이다.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안전에 유의할 것을 여러 차례 공지했다. 안전이 제일이니 당분간 며칠 쉬면서 사태 추이를 보자는 권고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대사관과도 긴밀히 연락하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대부분 베네수엘라에서 과거 몇 차례 반정부 시위를 경험한 분들이어서, 행동 요령이나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는 어느 정도 돼 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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