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축구장 공격' 부인에도 이스라엘 즉각 보복 폭격
이스라엘 "레드라인 넘었다"…서방은 확전 가능성에 촉각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레바논 남부 타이르 하르파 마을 |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이스라엘 점령지 골란고원의 축구장 로켓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전면전 위기로 치닫고 있다.
헤즈볼라는 어린이 등 12명이 몰살된 이 공격에 대해 이례적으로 무관하다고 부인했지만 이스라엘은 조사 결과 헤즈볼라의 공격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즉시 보복 공격했다.
이스라엘이 이슬람권 무장세력에 의한 자국민 인명피해에 특히 민감한 만큼 양측의 전면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이스라엘군은 28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차브리하, 보르즈 엘 크말리, 베카, 킬라, 랍 엘탈라틴, 키암, 타이르 하르파 등 여러 마을에서 무기 저장고 등 헤즈볼라의 목표물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오후 6시로 예정된 이스라엘의 안보 내각 회의 이후 더 강력한 대응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오후 미국에서 조기 귀국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의 주체로 헤즈볼라를 지목했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날 골란고원을 방문해 "축구장 벽의 로켓 잔해 조사 결과 53㎏의 탄두를 장착한 헤즈볼라의 팔라크 로켓으로 확인됐다"며 "군은 북쪽 전투의 다음 단계를 위한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헤즈볼라가 모든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자위권을 행사해 학살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고,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도 "헤즈볼라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켓 피격 축구장 방문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 |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국 등 서방은 물론 러시아까지 나서 '자제력'을 촉구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기자들에게 골란고원 축구장 로켓 공격 주체로 헤즈볼라를 지목하며 "자국민을 테러리스트의 공격에서 보호할 이스라엘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정부와 대화하고 있으며 이번 충돌이 악화하거나 확산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제를 촉구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서 이번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분쟁으로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며 냉정한 대처를 주문했고,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공격을 멈춰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프랑스 외무부도 이날 성명에서 축구장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새로운 확전을 피하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 외교수장 격인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전날 오후 이번 공격에 대한 독립적 국제조사가 필요하다면서 "모든 당사자가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해 확전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휴전·인질 석방 협상 중재국 중 하나인 이집트는 외무부 성명으로 확전 위험을 우려하면서 레바논과 미국 정부에 각각 헤즈볼라, 이스라엘에 대해 자제를 촉구해달라고 당부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는 주체와 무관하게 민간인에 대한 모든 테러를 규탄한다"면서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습격 뿐 아니라 (민간인을) 대량학살한 이스라엘의 국제인도법 위반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헤즈볼라의 후원자인 이란은 이스라엘에 경고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의 무지한 행동은 전쟁의 범위와 역내 불안을 키울 수 있다"며 "어리석은 모험에 대한 예기치 못한 결과에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대규모 범죄에서 세계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헤즈볼라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로부터 점령한 땅이다. 이슬람교 시아파 분파인 드루즈파를 믿는 시리아계 주민과 이스라엘 정착민이 거주한다. 이스라엘은 1981년 골란고원법을 제정해 자국 영토로 병합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영토로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골란고원은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레바논, 시리아의 무력 공방이 빈번했던 뇌관이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개전 이후 레바논 국경지대에서 헤즈볼라와 연일 충돌해왔다. 지금까지 민간인 90명을 포함해 레바논 측에서 450명 이상, 이스라엘에서 군인 최소 21명을 포함해 45명이 사망했다고 AP통신은 집계했다.
이란은 헤즈볼라의 군사 행동이 자체 결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은 공격 배후를 이란이라고 확신한다. 이란은 중동의 반미·반이스라엘 무장조직의 종교·사상적 연대인 '저항의 축'의 중추로, 이들을 직·간접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촉즉발의 위기인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면전은 사실상 이란과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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