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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김민기 별세’에 조국 “‘뒷것’을 자처해온 최고의 ‘앞것’… 영원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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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SNS에서 고(故) 김민기 애도…“끝내 이길 것”

세계일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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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의 상징 ‘학전(學田)’을 30여년 운영하며 ‘저항의 역사’로 불려온 가수 김민기 별세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2일 평생 ‘뒷것’을 자처해온 고인은 최고의 ‘앞것’이었다고 높게 평가했다.

조 대표는 이날 오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김민기 선생은 자신이 장르였던 예술가이자 광대”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1970년대 한국 포크록의 시동을 걸었고, 출중한 기타 실력을 보유했다”며 “민중의 피와 땀과 눈물을 빼곡하게 채워놓은 가사는 당대 청년의 가슴을 쳤다”고 경의를 표했다.

고인이 작곡한 대표곡이자 가수 양희은이 불러 나중에는 대학생들 입에서 입으로 전파된 ‘아침이슬’ 언급 대목에서 조 대표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폭압을 목도하며 청년 김민기가 만든 노래”라며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쨍해진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던 청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예와 부는 고인의 것이 아니었다며, 조 대표는 “그는 ‘앞것’이 아니라 ‘뒷것’을 택했다”고 강조했다. 앞에서 부각되는 존재가 아닌 다른 이를 위해 뒤에서 헌신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대표는 “‘학전’ 극장을 꾸리고 소리굿, 뮤지컬을 만들었다”며 ‘지하철 1호선’을 언급한 뒤, “한국 예술계에서 ‘뒷것’ 김민기 선생에게 빚지지 않은 ‘앞것’이 있나”라고도 했다.

고인이 활동하던 시기를 떠올린 조 대표는 “김민기 선생이 기타를 잡던 1970년대가 21세기에 재현되고 있다”며, “사람들은 비바람 맞고 눈보라 치는 들판에서 고통받고,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모를 지경”이라고 밝혔다. 야권이 윤석열 정권에 맞서는 상황을 ‘백척간두’로 표현해온 것과 같은 궤로 읽힌다.

조 대표는 “길은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길 것”이라며, “우리 마음에 영원한 청년이고 푸른 향기를 뿌리던 솔잎이었으며, 결국에는 최고의 ‘앞것’이었다”는 말로 고인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거듭 부각했다.

공연예술계에 따르면 김민기는 지난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한 그는 이듬해 서울 명동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열며, 가수 양희은과 대학생들을 통해 퍼져 나간 ‘아침이슬’을 작곡했다. 이 노래는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군중들에게 저항정신을 되새긴 곡이 됐다.

고인은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 등 제작에도 참여했고, 1994년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지난해까지 8000회 이상 공연을 올리며 70만여명 관객을 끌어모아 한국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씨와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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