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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기자수첩] 우주항공청 ‘허니문’ 언제까지 즐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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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우주항공청이 출범한 지 53일 지났습니다. 우주청에 요구하는 것에 따라서 잘못하면 발묘조장(拔苗助長) 하게 됩니다. 우주청을 기다려줄 수 있는 대로 기다려주시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이 18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자대회’에서 한 말이다. ‘발묘조장’은 서둘러 가려다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한 어리석은 농부가 모내기를 한 후 벼를 자라게 하려고 싹을 잡아 빼는 행동을 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노 차장의 말은 ‘우주청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지적을 삼가 달라’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우주 분야 연구자나 기업도 같은 입장일까. 한 우주 분야 연구자는 우주청이 ‘허니문(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부처나 기관이 새로 출범하면 초기에 언론이 비판이나 지적을 하지 않고 성과를 기다려주는 경우가 있다. 이를 허니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우주항공청이 이런 허니문을 즐길 여유가 과연 있느냐다.

우주기술 개발과 우주산업 육성이 한시가 급한데, 정작 우주청은 아직 인선조차 완료하지 못할 정도로 더디게 굴러가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2022년 9월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 준비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되면서 우주청 설립 업무에 착수했다. TF가 생긴 것부터 치면 곧 2년이다. 그런데도 우주항공청은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할 부문장은 아직도 선임조차 못하고 있다. 유력 후보의 과거 행적이나 노조의 반대 등 핑계 댈 거리는 많다. 그렇다고 비판을 피할 순 없다.

우주청 산하 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에 산적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를 구성되지 않은 탓에 임기가 끝난 후임 원장 공모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우주항공청 감사담당관도 뽑지 못한 탓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항우연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이직하려던 연구자들에 내린 감사 결과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항우연 발사체 연구자들은 이직이 1년 가까이 늦어진 채, 연구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우주 기업에선 우주항공청의 실질적인 R&D를 이끌 사람이 채용되지 않다 보니, 겉도는 이야기만 나온다고 하소연한다. 한 우주 분야 연구자는 “우주청 설립 준비 기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며 “제대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우주청이 출범됐다는 점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우주 기업 관계자는 “산업계와 학계, 연구계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준비가 안 된 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우주청의 업무 준비가 미흡하다 보니 웃지 못할 사건도 발생한다. 팸 멜로이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 부국장은 국내 언론을 만나 인터뷰한 자리에서 한국 우주청과의 협력 방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채용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날 인터뷰도 우주청이 아닌 주한미국대사관이 주관했다.

한국은 우주 분야에서 이미 선진국들과 차이가 벌어졌다. 심지어 한국에서 위성 기술을 배운 아랍에미리트(UAE)는 우리보다 먼저 화성에 탐사선을 보냈다. 연구자와 기업은 우주청에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제발 일을 좀 시작하기만 했으면 한다. 그러려면 사람을 뽑아야 한다.

송복규 기자(bgso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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