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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31 (토)

[안보윤의어느날] 요즘 세상이 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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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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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상하다’였다. 중개업자와 함께 집을 보러 공동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입 밖으로 낸 첫 말이기도 했다. 로비 안쪽 우편함과 비상계단 출입구까지의 공간은 넓고 평범했다. 다만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독립된 엘리베이터 홀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각각의 홀이 방화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는 점이 낯설었다. 그러니까 두 대의 엘리베이터 사이가 두꺼운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 1호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다가 2호기가 몇 층에 서 있는지 확인하려면 1호기 방화문을 열고 나가 2호기 방화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봐야 했다. 지하주차장에 있는 것은 한층 더해서 각각의 방화문에 출입 키패드가 아예 따로 붙어 있었다. 어휴, 복잡해라. 내가 말하자 공인중개사가 소방법 운운하며 대답했는데, 본인도 이유를 잘 모르는 듯했다. 이상한 엘리베이터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지금의 집을 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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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공간에는 익숙해졌으나 이번엔 다른 것이 생경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이사 초기에 낯선 이웃과 공동현관에 같이 들어선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려 나는 곧장 1호기에 올라탔고, 열림 버튼을 누른 채 이웃을 기다렸다. 우편함을 살피는 듯 잠시 뒤처졌던 이웃은 1호기 문을 열어두고 있는 나를 흘긋 바라보더니, 그대로 지나쳤다. 뭐지? 하는 사이 이웃은 2호기가 있는 홀로 들어가 버렸다. 올라갑니다, 문이 닫힙니다. 2호기가 내는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아니, 왜? 저 사람도 나도 위로 올라가는데 왜 굳이 엘리베이터를 따로? 이웃이 아닌가? 내가 이상해 보이나?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달린 거울로 내 차림새를 점검했다. 거울 속의 나는 약간 얼빠진 얼굴의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거의 매일같이 벌어졌다. 이곳 사람들은 도무지 누군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지 않았다. 독립된 홀에 타인이 들어서면 거북한 기운을 풍겼다. 옆 엘리베이터가 37층에 멈춰 있는데도 굳이 옮겨가 그것을 기다렸다. 정말 불쾌하다고 말했더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가 물었다. “너 사는 데 1인 가구가 많아?” 그런 편이라고 말하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 수 있지.” “뭐가 그럴 수 있어?” “요즘 세상이 좀, 그렇잖아.” 친구는 위험하니까, 라고 말했다. 이웃끼리 뭐가 위험하냐고 내가 투덜대자 친구가 말했다. “누가 이웃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말 안 쓰지 않아? 이웃이니 이웃사촌이니 그런 말.”

그런 말은 이제 다 사라졌어. 친구의 말은 곱씹을수록 쓸쓸한 냄새를 풍겼다. 사실 나는 옆집 사람과 인사 한 번 나눠 보지 못했다. 내 코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닫은 사람이 옆집 사람이었다는 말은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안전해지기 위해 고립을 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애틋했다. 동시에 머지않아 그러고 있을 내가, 굳건한 철문 뒤에서 닫힘 버튼을 눌러대고 있을 내가 너무 쉽게 상상이 되어 서글퍼졌다. 요즘은 좀, 그런 세상이니까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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