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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취재파일] 어느 산부인과의 '낙태 가격표'…40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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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토리 취재후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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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 등을 처벌해 온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 31일까지 새 법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새 법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현재 대한민국 법엔 낙태를 처벌한다는 규정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없다.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의료 체계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런 제도의 공백 속 어떤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을까? 두 번째는 임신 중절 수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일부 산부인과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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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주? 36주에 낙태를 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한민국에서 몇 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것 같은데요."





경기도에서 산부인과를 운영 중인 의사는 손을 내저으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의 병원에선 임신 12주 이내, 상대적으로 초기의 임신 중절 수술만 한 달에 1-2건 정도 한다고 했다. 임신 27주에 찾아온 경우도 있었지만 상담 끝에 수술을 받진 않았다고 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거지 이걸로 무슨 돈을 벌려고 사업성을 갖고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과연 그의 말은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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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명: DC TABLE



기자는 지난 6월 임신 중지의 현실을 취재하던 중 한 제보자를 만났다. 그는 서울의 한 산부인과의 실태를 잘 알고 있다며 자료를 보여줬다. 'DC TABLE'이라는 파일이 눈에 띄었다. DC는 자궁 소파술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Dilatation and Curettage)의 줄임말로 임신 중절 수술 전반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파일 안에는 5주부터 40주까지 임신 중절 수술 가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른바 '낙태 가격표'였다.

기본 가격은 5주 60만 원에서 시작했다. 주수가 높아질수록 상승 폭이 커져 40주는 2천만 원. 하지만 쌍둥이일 경우나, 유착방지제 등의 추가 약물이 들어가거나, 산모가 이미 제왕절개를 한 경험이 있는 등의 변수가 더해지면 가격은 크게 뛴다. (제왕절개를 한 경험이 있는 경우 중절 수술 시 과다 출혈 등의 위험이 크기 때문) 가장 '비싼 수술'은 제왕절개를 해서 태아를 꺼내야 하는 경우인데, 40주 산모가 제왕절개 방식으로 중절 수술을 받을 경우 3천1백만 원이라고 가격표엔 적혀 있었다. 40주는 만삭에 해당하는 주수다. 이 파일은 2019년 4월 처음 작성됐다. 같은 해 6월 이 병원에서 임신 39주의 산모가 2천만 원을, 37주의 산모가 1천750만 원을 내고 수술을 받았다. 기자가 확보한 자료 중엔 2006년, 2013년에 작성됐던 가격표도 있었다. 제보자는 이 병원이 30주 이상까지 임신 중절 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유명세를 탔고 병원을 찾는 외래 환자 대부분이 임신 중절 수술 고객이라고 했다.

"이 병원이 (일반) 영업이 안 되니까 DC를 콘셉트로 잡게 되다 보니까 외래는 전혀 없고 수술 공장처럼 운영하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어요. 외래 환자가 12명이면 11명은 DC 환자였던 거죠. 워낙 유명한 병원이라 큰 주 수를 한다고 알고는 있었는데 38주, 39주까지 하는 줄은 몰랐어요."





제보자와 함께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병원의 매출표를 살펴봤다. 환자 개인정보는 없지만 하루에 몇 명이 방문해 얼마를 주고 수술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2022년 1월 44명, 2월 52명, 3월 46명, 4월 39명, 5월 31명, 6월 44명… 많을 때는 한 달에 40~50명, 적을 땐 20~30명 수준이었다. "1월에 보시면 600만 원, 700만 원, 550만 원… 이런 거는 다 큰 주수라고 보시면 돼요. 2월에 2,600만 원 이런 것도 그렇고요." 이 산부인과는 한 달에 최대 2-3억 원대 수익을 임신 중절 수술로만 올리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이라거나 "수익 목적이 될 순 없다"던, 산부인과 의사들의 전언은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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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옷차림과 사는 곳으로 수술 가격이 결정된다(?)



제보자는 가격표의 정확한 의미를 묻는 질문에 "큰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환자가 지불하는 돈은 환자 개인에게 달려있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실제 가격은 또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그때 그때마다 환자분들 오면 이제 행색이나 주소지 보고, 뭐 예를 들어 서울에 좀 산다는 동네에 있으신 분들은 세게 불러요. 2천 만 원 이상."

실제로 이 병원에서 임신 30주에 수술을 받은 20대 A 씨는 2023년에 740만 원을 냈지만, 약 1년 전 똑같이 임신 30주에 수술을 받은 30대 B 씨는 2,800만 원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 개인 정보를 알 수는 없어서 이런 가격 차이의 정확한 근거를 찾을 순 없었다. 다만 환자별로 투입되는 약물이나 수술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같은 주수에 가격이 4배나 차이가 난다는 건 납득이 어려웠다.

수술비가 수천만 원에 달해도 현금 지급이 원칙이었다. 계좌이체보단 현금을 인출해서 가져오는 것을 선호했다. 일부 사정이 어려운 사람의 경우 카드 결제를 받아주기도 했지만 소수였다는 게 제보자의 이야기다. 비용이 완납돼야 수술이 진행 됐다. 현금을 선호하는 건 비단 이 산부인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서울의 또 다른 산부인과는 "카드는 기록이 남는다. 연말 정산 할 때 (임신 중절 수술을 받은 내역이) 뜰 거다. 카드를 끊게 되면 (병원에선) 100% 이제 신고가 들어가는 거라, 고객님이 선택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임신 중절 사실을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은 환자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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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행색과 주소지로 정해진다는 수술비, 법적으로 근거 없는 현금 지급 원칙까지. 제보를 받은 서울의 산부인과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임신 중절 수술을 하는 병원 중 적지 않은 곳들이 비슷한 실태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임신 중절 수술이 '비급여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이후 번호는 차단됐다



앞서 언급한 산부인과의 실태에 대해 보건복지부도 내용을 알고 있는 걸로 확인됐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해당 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해 구두 경고를 했다"고 밝혔다. 해당 산부인과의 정확한 입장을 듣고 싶었다. 제보자의 주장과 자료의 내용은 사실인지 등을 묻기 위해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 30주 이상 임신 중절 수술 많이 하신다고 하던데요?
원장: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거 안 해요.
기자: 임신 중절 수술 안 하세요?
원장: 초기만 해요
기자: 산부인과의사회에서 구두 경고도 받으셨죠?
원장: 그런 적 없어요.
기자: 같은 주 수 환자인데도 수술비를 다르게 받으신다고 하던데요?
원장: 무슨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기자: 30주 임산부 누구는 700만 원 받고 누구는 2,800만 원 받으셨던데요?
원장: 누구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기자: 제보자를 밝힐 순 없고요
원장: 다 잘못 알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사실 없어요.





이 원장은 첫 통화 이후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고 기자의 번호를 차단했다. 산부인과 측은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이 산부인과는 기자의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임신 중절 수술 광고앱에 기재했던 '최대 수술 가능 주수'를 30주에서 28주로, 다시 24주로 수정했다.

임신중지는 왜 더 어렵고 비싸졌을까



취재를 진행하며 이런 고민을 했다. '이 병원은 벼랑 끝에 몰린 위기의 여성을 돕는 곳일까 아니면 이들이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버는 곳일까.' 공급은 수요와 비례한다. 대형병원도 아닌 일반 산부인과가 한 달에 임신 중절 수술로만 수억 원을 벌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았단 뜻이다. 낙태죄가 폐지됐지만 30주 이상 임산부의 중절 수술을 해주는 병원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임신 중절 수술은 대형 병원보단 개원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출생률이 줄면서 개원 산부인과 중 수술 인프라를 갖춰놓은 곳은 많지 않다. 후기 임신 중지는 분만 수준의 수술 인프라가 갖춰져야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수술을 해주는 몇 안 되는 곳으로 수요가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만삭이 다 돼서 낙태를 할 수 있을까.'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현실을 뒤집어서 보면 이 여성들이 '왜 임신 초기에 더 안전하고 저렴하게 임신 중지를 하지 못했을까'라는 지점에 도달한다. 낙태죄는 폐지됐고 여성이든 의사든 처벌받지 않게 됐는데 그럼에도 초기에 임신 중지를 할 수 없는 다양한 현실의 장애물이 여전히 존재한단 뜻이다.

낙태죄 대체 입법은 되지 않고 이를 핑계로 정부는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제도와 의료 체계 개선에 손을 놓고 있다. 그 사이 누군가는 공백을 이용해 배를 불리고 있고, 누군가는 더 위험하고 비싸진 임신 중지의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있다.

▶ 목포 정육점에서 불법 낙태약을 팔고 있다? [취재파일]



박수진 기자 star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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