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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고물가·공공의료 악화에 英 민심 폭발…"'무능한 보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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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14년만 압도적 정권 교체…"보수당, 능력 쇼크로 우위 사라져"

국내외 혼란 속 리더십 해결력 부재·잦은 총리 교체

생활물가 급등·공공서비스 악화·이민 급증에 불만 쌓여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4일(현지시간) 치러진 영국 총선이 제1야당인 노동당 압승, 집권보수당 참패에 따른 14년만의 정권교체로 귀결된 데는 지난 보수당 정권 14년간 삶의 질이 급락했다고 여기는 지치고 분노한 민심이 자리 잡고 있다.

AP통신은 출구조사 직후 "보수당에 대한 분노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노동당 압승이 예고됐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유럽연합(EU)과 오랜 협상을 거치며 혼란을 겪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는 급등했고 재정 압박 속에 공공서비스는 악화했으며 이주민은 사상 최다로 급증했다.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지난 5월 말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영국의 현재 상태가 2010년보다 나쁘다고 답했다.

상태가 14년 만에 악화했다고 보는 분야도 광범위했는데 생계비용(85%),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NHS·84%), 이민 제도(78%), 경제(78%), 주거(72%), 치안(71%)이 나빠졌다는 여론이 특히 거셌다.

민심 이반에 따른 보수당 심판론이 일찌감치 확산한 가운데 리시 수낵 총리가 지난 5월 22일 7월4일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으나, 극적 반전은 없었고 수낵 총리의 '정치적 도박'은 실패로 끝났다.

연합뉴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투표소 표지판
[로이터 연합뉴스]



◇ 국내외 정세 혼란 속 '무능한 리더십'에 실망 쌓여

유럽 재정위기, 극우 포퓰리즘 발호, 선진국으로의 이주민 급증을 거치며 유럽연합(EU) 회의론이 대두하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 정부는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며 2016년 브렉시트를 국민투표에 부치고 EU 잔류 진영을 이끌었지만 패배했다.

이후 출범한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정부는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끌어오는 데 집중했으나 협상은 순탄치 않았고 당내 분열도 극심했다.

코로나19 봉쇄 기간 국민은 고통받는데 총리실에서 잔치판이 벌어졌고 존슨 전 총리가 이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인 '파티 게이트'가 터졌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재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가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을 촉발, 취임 49일 만에 사임하며 '양배추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을 얻었다.

첫 인도계로, '40대 기수'인 리시 수낵 총리는 2022년 10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6년 만에 4번째 총리로 취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으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조기 총선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유고브의 5월 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2010년 이후 보수당 정부가 해온 국정 운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2019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찍은 응답자의 경우에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47%에 달했다.

세라 B 호볼트 런던정경대 교수는 최근 외신기자협회 브리핑에서 "파티게이트, 트러스 총리 단명, 물가급등, NHS, 생활비 위기, 미미한 브렉시트 혜택, 높은 수준의 이주민 유입 등 일련의 '능력 쇼크'(competence shock)로 보수당이 노동당에 대해 가졌던 우위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영국 의사당 웨스트민스터궁
[로이터 연합뉴스]


◇ 최대 문제는 경제…생활물가 급등에 고충 커져

영국민이 총선을 앞두고 결정에 고려할 최대 현안으로 꼽은 것은 경제와 물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률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중간 정도지만, 코로나19 이후 회복 속도가 더뎠다. 2019년 말 대비 영국 경제는 1.8% 성장해 G7 중 두 번째로 낮았다.

브렉시트와 경제 불확실성 속에 투자가 줄었다.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IPPR)에 따르면 민간 투자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G7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서민층이 가장 큰 문제로 호소하는 것은 생활물가 급등이다.

2022년 10월 물가 상승률이 연 11.1%에 이르렀고 기준금리는 16년 만의 최대 수준인 연 5.25%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들어 물가 상승이 둔화했으나 식품 가격은 2022년 초보다 여전히 25% 높은 수준이다.

수낵 총리는 선거 기간 내내 "보수당은 감세하고 노동당은 증세할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으나 이 역시 먹혀들지 않았다.

이미 보수당 집권 기간 조세 부담이 기록적인 수준으로 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재정연구소(IFS)에 따르면 현재 국내총생산(GDP)에서 정부 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36%로 1948년 이후 7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연합뉴스

영국 공공의료 NHS
[AFP 연합뉴스]


◇ "아파도 병원 못가" 의료 위기 심각…이민도 사회적 부담

보수당 정부는 공공 부채를 줄이기 위해 공공 지출 삭감에 나섰고, 그 결과 공공서비스의 질이 악화했다.

가장 큰 위기에 닥친 것은 공공의료인 국민보건서비스(NHS)다. 응급치료부터 진료, 진단, 수술까지 긴 대기시간으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질적인 인력·자원 부족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격히 악화해 병원 진료에 대기중인 환자가 750만명에 이른다.

국가사회연구소(NatCen)의 '영국 사회 태도 조사' 결과 NHS에 만족한다는 응답률은 24%로, 2020년보다 29%포인트 급락했다.

이민도 영국인들의 불만을 높인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합법 이주민이 늘면서 영국으로의 이민 순유입은 2022년 74만5천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2019년 18만4천명에서 급증한 것이며 2023년 68만5천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불법 이주민은 그보다 수는 훨씬 적지만, 사회적 문제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등지에서 EU 회원국인 프랑스로 들어왔다가 다시 소형 보트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들어온다.

2022년 4만5천755명으로 최다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2만9천437명으로 다소 줄었으나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만3천여 명으로 지난해나 2022년 동기보다 많다. 2018년 이후 거의 12만명이 이 루트를 통해 영국으로 들어왔다.

보수당 정부는 불법 이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망명 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는 르완다 정책을 추진했으나 이는 인권침해 논란을 낳았고 유럽인권재판소(ECHR)와 마찰을 일으켰다. 의회에서도 관련법이 장기간 논쟁 끝에 가까스로 통과됐으나 결국 르완다행 항공기를 한 번도 띄우지 못했다.

연합뉴스

소형 보트에서 이주민들을 끌어올리는 영국 해안경비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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