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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23명 사망한 화성 리튬공장 참사, 우리가 의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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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최근 경기도 화성의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로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 중 18명은 이주노동자였다. 놀랍지 않은 일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고 업무 부담이 크며, 위험해서 인력이 부족한 산업 분야의 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왔다. 이주노동자가 출신국에서 얻을 수 있는 소득보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대체로 높은 덕에, 충분한 임금과 근로 환경을 제공할 역량이 없는 국내 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어떤 의미로는 우리가 의도한 일이며, 적어도 이윤을 대가로 우리가 용인한 일이다.

혹자는 이 사건이 안타깝지만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노동자와 기업은 자유롭게 계약을 했고, 이주노동자는 출신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소득을 올림으로써 평균적인 위험에 대해 충분히 보상 받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복잡한 맥락은 지운 채 결과만을 두고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정말일까? 오늘 소개할 논문에서는 한국의 고용허가제와 같은 계약직 이주노동 프로그램이 노동자 개인에게 주는 이익과 비용을 이모저모 따져 보았다.(☞ 바로 가기 : 계약직 이주노동 프로그램의 이익과 비용: 인도-아랍에미리트 이주 통로에서 실험적 증거) 연구진은 인도의 남성 노동자 4000여 명 중 무작위로 일부에게만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의 건설 현장에서 일할 기회를 제안하는 실험을 하고, 평균 1년 반이 지난 뒤 실험군과 대조군의 고용 여부와 소득, 근무 시간, 삶과 직장에 대한 만족도 차이를 관찰했다.

실제로 이주노동은 노동자들에게 많은 금전적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기업에서 제공하는 주거 공간이나 음식의 가치까지 고려할 때, UAE에서 일할 기회를 제안 받은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해 평균 30%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 근로소득만 따졌을 땐 21%를 더 벌었다. 이주노동의 기회를 얻으면 실직 상태에 있을 확률은 4~7%p 더 낮았고, 주 2.9~4시간 더 오래 일했다. 이러한 경제적 기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주노동을 제안 받은 실험군의 약 절반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즉, 실제로 UAE에서 일한 노동자는 인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보다 무려 두 배 많은 소득을 벌었다. 이는 이주노동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의 10%가 일자리를 중개한 브로커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큰 차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인도의 노동자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차버렸을까? 이들은 UAE 이주노동이 주는 금전적 이익만큼이나 비금전적 손해가 클 것이라고 예상한 것 아닐까? 이런 예상은 실제 이주를 선택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UAE 일자리 제안은 스트레스, 불안, 행복과 같은 8가지 긍·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빈도로 측정한 삶의 질 점수를 표준 편차의 0.16배만큼 떨어뜨렸다. 특히 신체적 고통의 증가와 즐거운 일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11가지 문항으로 측정한 직업 만족도 점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각 문항별로 보았을 때, 날씨와 일의 육체적 강도에 관한 만족도는 유의미하게 떨어졌다. 대신 UAE 이주노동을 제안 받은 노동자들은 산재 위험이 덜하고, 관리자들이 동기 부여를 더 잘 해주며, 더 공평하다고 느꼈다.

일자리 제안을 받았음에도 이를 승낙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UAE에서 일하며 감수해야 할 비금전적 손해를 크게 느낀 게 아니라, 생산성이 낮아 금전적 이익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연구진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관찰된 결과들로 추정해 보건대, 일자리 제안을 거절한 사람들도 만약 UAE에서 일하기로 했더라면 금전적 보상이 1.5배 증가해 실제로 일자리를 승낙한 사람에 버금가는 이익을 봤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이 UAE에 갔더라면 경험했을 삶의 질 척도는 표준 편차의 1배만큼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어, 일자리를 승낙한 사람들보다 감소 폭이 컸다. 즉, 이들이 제안을 거절한 주요한 이유는 일자리의 비금전적 손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어떤 이유로든 UAE 건설 현장의 더운 날씨나 업무 강도에 특별히 잘 적응할 수 있고 불편함을 덜 느끼는 사람들만이 이주노동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이들은 비금전적 손해를 더 심각하게 여겨 이주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실제로 이주를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삶의 질 하락이 관찰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들 역시 손해를 감수하고 금전적 이익을 선택했을 뿐이다. 연구진은 이런 추정치를 바탕으로 일정 수준까지 UAE의 최저임금을 올리거나 근로 환경을 개선하면 일자리 제안을 거절했던 노동자도 UAE에서 일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그리고 이들이 얻는 편익이 근로 조건 개선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기업이 잃어버리는 편익보다 클 것이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레시안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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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이주노동자는 산재 위험과 같은 비금전적 손해를 상쇄할 만한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을까? UAE에서 일하는 인도 출신 노동자와 한국 이주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전혀 다르므로 섣불리 단정짓기 조심스럽지만, 적어도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오늘 살펴본 연구 결과처럼 어떤 구직자에게 이주노동은 큰 금전적 이익 이상의 비금전적 손해를 의미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볼 때 해당 임금과 근로 환경은 비효율적인 것일 수 있다. 연구진은 효율적인 방향으로 근로조건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를 UAE 기업들이 노동시장에서 상당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고, 덕분에 낮은 근로조건을 제시해도 고용량이 가파르게 줄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찾는다. 이러한 기업의 독점력은 여러 이유로 생겨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는 이주노동자의 자유로운 이직을 가로막는 고용허가제 등의 법적 요인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다시 구조와 맥락이다.

이렇게 이주노동이 노동자 개인의 좋은 삶과 사회 후생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현상을 유지시키는 구조는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이주노동자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필요성과 별개로, 전체와 평균에 대한 분석이 이주노동자의 삶과 죽음의 경험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대체해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이며, 공장 화재의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서지 정보

- Naidu, S., Nyarko, Y., & Wang, S. Y. (2023). The Benefits and Costs of Guest Worker Programs: Experimental Evidence from the India-UAE Migration Corridor (No. w31354).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최강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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