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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무더위와 강더위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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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일보

3일 도로 인근 빗물에 파란 하늘이 잠겨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장마철엔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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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됐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시인들에게도 장마는 달갑잖았던 듯싶다. "비는 하염없이 마당귀에 서서 머뭇거리고/ 툇마루에 앉아있으니 습습하다. / 목깃 터는 비둘기 울음 습습하다. / 어둑신한 헛간 냄새 습습하다. / 거미란 놈이 자꾸 길게 처져 내렸다/ 제자리로 또 무겁게 기어 올라간다(하략)" 문인수의 '장마'에선 냄새도 소리도 장면도 축축하게 느껴진다. “7월 장마 비오는 세상/ 다 함께 기죽은 표정들/ 아예 새도 날지 않는다”라고 읊은 천상병의 '장마'엔 시인의 한숨 소리가 담겼다.

장마는 우리말이다. 16세기 문헌에 나오는 ‘댱마ㅎ’가 어원이다. ‘댱’은 길다는 뜻이고, ‘마ㅎ’는 비를 의미한다. 여러 날 계속되는 비로, 보통 이맘때가 장마철이다. 사계절 틈새에 계절 하나가 더 있다는 생각에, 장마에 철을 붙였을 게다. 예전 장마철엔 우산 쟁탈전이 치열했다. 살이 한두 개 부러지거나 찢어진 우산이라도 일찍 집을 나서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엔 골목골목 다니며 "우산 고쳐요"라고 외치는 사람이 반가웠다.

끈적끈적한 더위는 참기 힘들다.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가 '습한' 더위다. 무더위는 ‘물’과 ‘더위’가 어울렸다. ‘물더위’에서 ‘ㄹ’이 탈락해 무더위가 됐다. 찜통더위는 찜통에 물을 끓일 때 나는 뜨거운 김을 쐬는 것처럼 뜨겁고 습한 더위다. 최악은 가마솥더위다. 물이 펄펄 끓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가마솥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른' 더위는 강더위다. 비가 내리지 않고 볕만 뜨겁게 내리쬐는 더위다. 강더위의 ‘강-’은 한자어 강(强)이 아니라 우리말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으면서 매섭게 추운 강추위, 강서리(늦가을에 내리는 된서리), 강기침(마른기침) 등의 ‘강’도 모두 ‘물기 없이 마른’의 의미를 더한다. 강더위보다 더 뜨거운 건 불더위, 불볕더위다. 된더위, 한더위도 선풍기나 부채로는 떨칠 수 없는 더위다.

한자어 폭염, 폭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느낌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우리말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강더위, 불더위, 불볕더위, 된더위, 한더위는 모두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오란비. 장마를 일컫는 우리 옛말이다. 오래를 뜻하는 고유어 ‘오란’과 물을 뜻하는 ‘비’가 만났다. 말맛이 고와서일까. 오란비는 능소화 꽃만 활짝 피울 뿐, 홍수 피해를 내진 않을 것 같다. 오란비가 이름값을 하길 바란다.

한국일보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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