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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유치원서 만나 50년 해로…"좀비처럼 살기 싫다" 동반 안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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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동반 안락사를 선택한 얀 파버(70·왼쪽)와 엘스 반 리닝겐(71) 부부가 생을 마감하기 이틀 전 찍은 사진. 사진 엑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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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시절 처음 만나 50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한 네덜란드 70대 부부가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BBC 보도에 따르면 네덜란드 부부 얀 파버(70)와 엘스 반 리닝겐(71)는 6월 3일 의사로부터 약물을 투여받고 함께 숨졌다.

얀과 엘스는 유치원 시절 처음 만났고, 20대 때 결혼해 아들을 한 명 낳았다. 얀은 유년시절 네덜란드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 하키 선수로 활약했고, 이후 스포츠 코치가 됐다. 엘스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부부의 공통 관심사는 '바다'로, 결혼 생활의 대부분을 보트에서 보냈으며 화물선을 구매해 화물 운송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부부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10년 넘게 무거운 화물을 옮겨가며 일한 얀은 허리 통증으로 2003년 수술을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엘스 역시 2018년 교사직에서 은퇴한 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였고, 2022년 11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동반 안락사에 대해 아들과 논의했다.

얀은 "약(진통제)을 많이 먹으면 좀비처럼 살아야 했다"면서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아내의 병(치매)을 생각했을 때 이걸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동반 안락사를 결정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았다. 얀은 "(아들이) '부모님이 죽는 걸 원치 않는다. (병을 고칠 수 있는) 더 나은 시대가 올 거다'라고 말해 눈물이 났다"면서도 그와 엘스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안락사 전날, 부부는 아들, 손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산책했고, 마지막 저녁 식사 자리에 가족이 모두 함께했다. 아들은 "가족 모두가 함께 마지막 저녁 먹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다음 날 아침, 부부의 가족과 친구들은 지역 호스피스에 모여 2시간 동안 추억을 나눴다. 이후 부부는 의사로부터 치명적 약물을 투여받고 함께 생을 마감했다.

아들은 "마지막 30분은 힘들었다"며 "의사들이 도착한 뒤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네덜란드는 지난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요청한 경우 ▶요청자의 신체적 또는 심리적 고통이 의사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평가된 경우 ▶개선 전망이 없는 경우 등의 기준이 충족됐을 때 안락사를 시행한다.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안락사로 사망한 사람은 9068명으로, 이는 전체 사망자 수의 약 5%를 차지한다고 BBC는 전했다. 이 중 동반 안락사 사례는 33건으로 66명이었다.

현예슬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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