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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비 쏟아진다는데 물막이판 없어"…침수 악몽에 떠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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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A아파트 단지는 2022년 이른바 ‘극한 호우’ 때 큰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지하주차장 입구가 완전히 물에 잠겨 지붕만 간신히 물 위로 드러난 차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30일 찾은 이 아파트는 여전히 단지 외부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있는 차수판(물막이판)을 설치하지 않았다.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모래 주머니 10여개만 덩그러니 쌓여있었다.

해당 아파트에 살고 있는 대학생 김모(24)씨는 “지하주차장에 물막이판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며 “장마철만 되면 지하주차장 침수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데 모래주머니 만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를 관리하는 업체 측 관계자는 “아파트 구조 때문에 지하주차장에만 물막이판을 설치할 수가 없다”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양수기 펌프를 준비해뒀다”고 말했다.

제주 성산에 시간당 81mm의 극한호우가 내리는 등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면서 시민들의 침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서울연구원이 서울 시내에서 침수 피해 우려가 크다고 보는 곳은 강남·서초·강서구 등이다. 2010년 이후 2차례 이상 침수 피해를 입었거나 시간당 100㎜ 이상 비가 내릴 경우 침수가 예상되는 곳이지만,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이 지역내 5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 13곳을 조사해보니 물막이판이 설치된 아파트는 단 3곳에 불과했다.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10개 단지 중 2곳은 2022년에 이미 침수피해를 입었던 곳이었다.

실제로 2년 전 침수 피해를 겪었던 서울 송파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를 찾아가 보니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어제(6월 29일)처럼 비가 오면 지하주차장 출입구 쪽에 물이 들어온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전 비 피해를 입은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 A씨(69)는 “우리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어 주차장 물막이판을 설치할 수가 없다”며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2022년 극한 호우 당시 일가족 3명이 숨진 반지하 주택의 물막이판 설치도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지난 28일 기준 반지하 주택 2만4842가구 중 물막이판이 설치된 가구가 61.3%(1만5217가구)라고 설명했다. 나머지 38.7%(9625가구)는 주민의 설치 반대, 거주자 부재 등의 이유로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았다.

물막이판 설치가 저조한 원인으로는 낙인 효과로 인한 집값 하락 우려 등이 꼽힌다. 서울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일부 공동주택에서 물막이판 설치 시 침수우려지역 낙인 및 집값 하락을 우려해 물막이판 설치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를 쓴 김성은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시가 지원금을 줘 시설 설치를 유도하더라도 관리·책임 문제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집주인 등 관리 주체가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주택은 사유재산인 만큼 물막이판 설치도 자율적인 노력·시도가 우선돼야 한다”면서도 “기후 이변에 따라 집중호우가 계속되면서 자주 침수가 발생하는 지역의 경우엔 보다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주거나 의무화를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보람·신혜연·이영근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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