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특유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요. 흔히 브랜드 정체성, 페르소나,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들이죠. 그렇다면 이런 브랜드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들은 어떻게 이토록 매혹적인 세계를 만들고, 설득할 수 있을까요. 비크닉이 브랜드라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무대 뒤편의 기획자들을 만납니다. 브랜드의 핵심 관계자가 전하는 ‘오피셜 스토리’에서 반짝이는 영감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사우나(sauna)가 붐이다. 뜨거운 방에 들어가 땀을 흘리는 핀란드식 목욕탕, 그 사우나 말이다. 특히 대중목욕탕을 잘 드나들지 않던 젊은 층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카츠(サ活·사우나+활동)’라는 신조어도 생겼을 정도다.
지난 2022년 12월 도교 도심 한복판에 문을 연 '시부야 사우나스'의 내부 공간. 사우나도 감각적일 수 있다는 콘셉트를 실현한 공간이다. 사진 시부야 사우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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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이 사우나 붐이 만화라는 서브컬처(하위문화)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일본 전역의 유명 사우나를 탐방하는 내용의 만화 ‘사도(サ道)’가 그것. 처음에는 만화 팬을 중심으로 조금씩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다가, 지난 2019년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가 대중적 반응을 끌어냈다.
사우나 붐이 일면서 신개념 사우나도 하나둘 문을 열었다. 지난 2022년에는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시부야 사우나스’가 개관했고, 지난 4월 문을 열어 도쿄 하라주쿠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은 쇼핑센터 ‘하라카도’에도 목욕탕이 자리했다.
도큐플라자 하라주쿠점 '하라카도' 지하 1층에 입점한 '고스기유 하라주쿠 목욕탕'의 모습. 사진 하라카도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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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은 흔히 생각하는 동네 목욕탕은 아니다. ‘사우나도 감각적일 수 있다’는 기획 아래 만들어진 시부야 사우나스에는 사우나 공간에 더해 업무 공간과 회의실, 비건 레스토랑과 굿즈(기념품) 상점 등도 있다. 하루 방문객만 300~350명,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사우나 수건부터 티셔츠, 에코백 등 굿즈 매출만 연 3억원이라고 한다.
시부야 사우나스는 웰니스 기업 토요쿠(TOYOKE)의 작품이다. 만화 ‘사도’의 원작자 타나카 카츠키가 주요 기획자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 도요케가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후루야 쿠란도 토요쿠 대표와 나가이슈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지난달 한국을 찾았다. 도쿄의 다양한 콘텐트를 한국에 전하는 문화 기획팀 ‘도쿄다반사’가 주최하는 ‘인사이트 밋업’에 연사로 나서면서다.
지난달 22일 한국에 방문한 나가이 슈지 시부야 사우나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만나 인터뷰 했다. 사진 도쿄다반사 |
지난달 22일 나가이 슈지(永井 秀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나가이 슈지는 일본의 대표적인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빔즈(BEAMS)’에서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했던 잔뼈 굵은 기획자다.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미술 작품을 티셔츠에 담는 브랜드 ‘빔즈 T’를 설립하는 등 패션과 문화를 융합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자 리테일 콘텐트로서 사우나의 가능성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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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고 차 마시며 사우나 한다
Q : 패션 브랜드 기획자에서 갑자기 사우나 일을 하게 됐다, 계기가 있었나?
A : 역시 만화 때문이었다(웃음). 만화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고, 문화 콘텐트가 삶을 변화시킨다는 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시부야 사우나스의 기획 멤버가 다섯 명인데, 우리 모두 사우나를 좋아한다. 2019년쯤 시부야에 비어있는 건물이 있는데 사우나를 열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만화 원작자인 다나카 프로듀서와 빔즈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어 연결고리가 있었다. 만화 속의 사우나를 실제 공간에 전개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뭔가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합류하게 됐다.
Q : 공간 소개를 한다면.
A : 총 9개 콘셉트의 사우나가 메인 공간이다. 다나카 프로듀서와 후루야 대표가 세계 각지의 사우나를 다니면서 수집한 다양한 사우나 형태를 적용했다. 핀란드식, 독일식, 북유럽식은 물론 명상이 가능한 다실 형태의 사우나 같은 일본식 콘셉트도 곁들였다. 한 사우나 공간은 좋은 음향 시스템이 구현돼 연주 음악을 들으면서 사우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 각지의 사우나에서 수집한 9개 테마의 사우나 공간을 설계했다. 사진 시부야 사우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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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빔스에서는 아트 협업 티셔츠를 만드는 등 주로 브랜드 기획을 했다. 시부야 사우나스에서는 어떤 역할을 했나.
A : 시부야 사우나스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보고 접근했다. 예를 들어 사우나에 입장하면 주는 옷도 ‘디가웰(DIGAWEL)’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해 제작했다. 특히 굿즈에 공을 들였다. 사우나 모자 같은 경우 리투아니아 같은 본고장의 울과 펠트 소재를 사용하는 등 좋은 품질의 것을 선보이려고 노력했다. 티셔츠 역시 단순히 사우나 로고를 넣기보다 그래픽 아티스트의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해 본질적 멋을 강조했다.
Q : 굿즈가 꽤 인기가 많다고.
A : 사우나 모자가 특히 호평이다. 나도 10개 정도를 가지고 있어서 ‘오늘은 이걸 쓰자’는 식으로 골라가면서 활용하고 있다.(웃음) 일본에서는 매년 도쿄 이세탄 신주쿠나 오사카 한큐 같은 백화점에서 ‘사우나 기획전’을 연다. 이곳에도 우리 굿즈를 가지고 출점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로지 사우나 굿즈를 사기 위해 오는 행사다.
시부야 사우나스에 판매하는 굿즈. 사진 시부야 사우나스 공식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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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나 방법 알려줬더니 2030이 반응
Q : 일본에서 사우나가 정말 인기인가.
A : 기존에 사우나는 아저씨들이 주로 간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최근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사우나에 간다. 만화와 드라마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게, 만화에서 사우나를 올바르게 하는 방법에 대해 굉장히 집요하게 소개한다. 몇 번 탕에 들어가고, 몇 번 사우나에 들어가는지 등 ‘사우나 사용법’을 정돈하는 식이다. 사우나 경험이 없는 젊은 층에 정확한 사용법을 알려준 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Q : 공간이 좋아서라기보다 사우나의 매력에 빠진 건가.
A : 유행이라서 가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사우나의 매력에 빠져버렸다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기성세대들이 사우나를 제대로 하면 얼마나 좋은지를 알려주지 못했다. 이걸 만화가 해준 셈이다. 실제로 그대로 시도해보니 밤에 잠도 잘 오고 기분이 상쾌해졌다는 간증이 이어졌다. 자연스레 사우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생겼다.
Q : 공간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도 굉장히 본격적이다.
A : 사우나에서 독일 사우나 문화 중 하나인 아우프구스(aufguss) 이벤트를 연다. 수건이나 부채,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사우나의 열기를 순환시키는 행위로 특별한 훈련을 받은 마이스터(장인)만이 할 수 있다. 일본에도 아우프구스 대화가 있는데, 여기서 3위 안에 들어서 세계대회까지 참여했던 숙련된 마이스터가 진행하고 있다.
독일 사우나의 꽃으로 불리는 아우프구스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시부야 사우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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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요즘 한국에서는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본에서도 젊은이들이 사우나에 몰입하게 된 배경에 일상적 과잉 자극이 있을 것 같은데.
A :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본다. 사우나에 들어간 90~120분 정도는 스마트폰이나 SNS를 차단할 수 있지 않나. 혼자 들어가서, 명상적인 행위를 하는 셈이다. 그런 환경 속에서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는 게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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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웰니스, 기분 좋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
Q : 단순히 사우나만 있는 공간은 아닌데.
A : 라운지와 레스토랑이 있다. 라운지에서는 IT 업계 젊은 직원들이 함께 사우나를 즐기고 업무를 하거나 회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19 이후 원격 근무가 가능해지는 등 일하는 문화가 바뀐 것도 있고, 사우나를 즐기고 나면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식 공간에서는 비건 카레 등 자연스러운 음식을 제안하고 있다. 돈가스나 카레에 맥주를 곁들일 수도 있지만, 이런 욕구 충만한 메뉴가 아니라 이왕 사우나 이후 깨끗해진 몸과 마음에 어울릴 수 있는 음식들을 개발했다.
사우나 공간 외에도 회의 공간이나 라운지, 비건 레스토랑이 함께 구성돼 있다. 사진 시부야 사우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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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웰니스’가 무엇일까.
A : 예전에는 돈이 생기면 패션이나 자동차 같은 물건에 투자했다. 요즘은 다르다. 음식이나 여행, 레저 활동 같은 무형적 경험에 중점을 두는 시대가 됐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기분 좋게 일상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현명하면서도 인간다워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물건을 판매하기보다 내면을 다룰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하는 게 좋다. 지금 시점에서 나온 답이 사우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Q : 시부야 사우나스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런 브랜드를 잘 만들고 지켜나가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A :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SNS 같은 온라인상 장소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모두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웃음) 빔즈에서 30년간 해왔던 것도 결국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를 발신할 수 있는 장소,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제 사우나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고 생활의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만드는 일을 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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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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