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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ET시론] 위기의 통신정책이 가야 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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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이성엽 고려대 교수


지난주 과기정통부의 스테이지엑스에 대한 제4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취소 결정으로 당사자가 반발하고 언론과 야당도 정책실패를 지적하며 통신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통신정책을 법제화한 전기통신사업법은 통신정책의 목표를 전기통신사업의 적절한 운영과 전기통신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전기통신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먼저 통신서비스 경쟁정책이 있는데, 법문은 전기통신사업의 효율적인 경쟁체제의 구축과 공정한 경쟁환경의 조성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통신정책의 목표로는 통신인프라의 구축과 고도화, 효율적인 주파수 관리, 통신 이용자 보호, 보편적 서비스 제공 및 디지털 격차의 해소 등이 있다. 다만, 여러 정책 중 경쟁정책이 실제로 통신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래 통신시장은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법률상 독점 내지 정부규제가 지배하고 있었고, 경쟁체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후에도 유무선 통신의 양대 영역에서 과점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통신시장은 유선시장이나 무선시장 모두 국영 독점사업자의 승계기업이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준독점적 경쟁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독과점에 따른 폐해를 인위적으로 시정하고, 경쟁시장에 상응하는 시장성과를 담보해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통신 경쟁정책과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통신규제법인 전기통신사업법이 제정 40주년을 앞두고 있다. 1984년 9월 1일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이란 이름으로 제정된 전기통신사업법은 우리나라가 통신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유무선 통신인프라 강국으로 도약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1991년 전기통신사업법으로 개명하며 도입한 '부가통신사업'은 오늘날 플랫폼 서비스의 첫걸음이 됐다.

또 1990년대 이어진 법 개정은 통신 시장 경쟁 체제 도입의 신호탄이 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라는 국가 자본이 운영하던 통신 시장의 독점 체제는, SK, 포스코, LG 등 새롭게 축적된 산업 자본이 들어오며 경쟁 체제로 전환됐고, 경쟁을 통해 성장한 통신 자본은 자생적 투자를 통해 초고속인터넷과 5G로 이어지는 확대 재생산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했다. 근대화에서 산업화로,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이어진 역사의 법제적 인프라가 바로 전기통신사업법이었던 것이다.

2010년대는 또 한 번 역사적인 전환이 일어난다. 바로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대전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통신은 '음성'이라는 단순 소통의 수단에서 '인터넷'을 매개로 한 다원화된 소통의 장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 전기통신사업법은 '시장 관리'라는 기존 틀을 깨고 '경쟁 확대'와 '규제 완화'를 화두로 개편됐다. 2012년 알뜰폰 등장과, 2019년 기가통신사업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의 진입 규제 완화, 2020년 통신요금 인가제 폐지는 그러한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 사이 통신인프라는 광랜과 LTE를 넘어 기가인터넷과 5G로, 서비스는 유무선 결합에서 방송, 통신, 인터넷 융합으로 진화했다. 법제도 개편이 시장의 혁신을 견인한 결과다.

2020년대에 이르러 우리는 생성형 인공지능(AI) 등장과 함께 AI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정책은 AI 대전환을 위한 준비에 미흡하며, 여전히 경쟁 활성화와 이용자 보호라는 종래 전통적인 목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신 경쟁정책의 경우에도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책의 일관성이나 정책간 조율이 미비한 상태에서 각론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제4 이동통신 정책인데, 정부는 지난주 제4 이통통신 선정을 취소하는 방향을 정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자본금이나 주주 구성에 대한 사업자의 서약이 이행되지 않고 향후 이행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점에서 주파수 할당 절차를 중단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더 큰 피해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취소 결정은 정책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히 대응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결국 28㎓ 대역 제4 이통통신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판단이 정부의 예상과는 달랐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8차례 제4 이통 정책이 모두 실패한 이유는 이동통신사업 수행 능력, 즉 '자금력' 문제였고, 특히 이번 28㎓는 통신망 구축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사업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던 주파수 대역이었다. 정부가 목표 설정 단계에서부터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는 등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실현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 정책방안 간 상충도 문제다. 이통3사의 과점적 구조를 개선해 가계통신비를 인하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었던 '제4 이통'과 '알뜰폰'은 사실 서로 경쟁 관계에 있어 양립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양자를 동시에 추진했고 여기에 더해 이통사에 대한 지속적 통신비 인하 정책까지 진행되면서, 당초 기대했던 이통3사의 과점적 구조 개선의 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용자로서는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게 되는 장점이 있으나, 실제로는 요금경쟁이나 품질경쟁이 일어나지 않아 소비자 효용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신규 사업자의 유입이나 기존 사업자의 지속가능한 생존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알뜰폰은 고사위기로 몰리고 있다. 정부가 통신비 인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가 2만원대 5G 요금제를 출시해 알뜰폰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또 고가단말기 부담 해소를 위해 도입된 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 정책은 아직 시행이 되지 않고 있고 번호이동에 지원금을 더 주는 '전환 지원금' 정책은 효과가 별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 통신 3사가 과거처럼 개인 가입자를 대상으로 마케팅 출혈 경쟁을 벌일 유인은 애초부터 크지 않아 정책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노력으로 통신인프라가 고도화되고 통신비 인하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등 성과도 상당했지만, 이는 경쟁정책 고유의 성과라기보다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통신정책의 모든 목표가 '가계통신비 인하'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소비자 효용 차원에서 중요한 정책이기는 하지만, 다른 중요한 통신정책 목표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기본적인 통신정책의 목표는 통신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고도화하는 것이다. 또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정보통신망 공격이나 불법 콘텐츠로부터 통신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 그리고 통신 약자에 대해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그럼에도 유독 가계통신비 인하를 강조하다 보니 다른 정책이 소홀히 다루어지거나, 정책간 중복과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책방안 간 충돌을 유의하고 정책방안의 중요도를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또 네트워크 구축과 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기간통신사업자 중심의 기존 전기통신사업법 체계를 부가통신사업자인 플랫폼에 대한 진흥과 규제를 포함하는 법체계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사업자와 플랫폼사업자 그리고 최종이용자의 관계를 규율할 필요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정보통신망법의 이용자 보호 조항을 포함해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별도의 법체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글로벌 AI 패권경쟁의 시대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AI 기술 우위'를 목표로 2500억달러 지원 계획을 담은 '혁신경쟁법'을 제정했다. 국방 등 공공분야에 정부 투자를 강화하는 한편, 구글, 애플, 아마존 등 빅테크들은 글로벌 생태계 조기 선점에 나섰다. 중국도 맞불을 놓고 있다. 2030년까지 미국 추월을 목표로 약 160조원을 투자하는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차세대 AI 오픈 플랫폼'을 담당할 15개 선도기업도 선정했다.

한국은 2023년 영국 토터스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 지수 조사'에서 종합 6위를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순위지만, 총점은 40.3점으로 미국(100점), 중국(61.5점)과는 격차가 엄존했다. 특히, 민간 투자는 8.3점으로 세계 18위권에 불과했다. 개별 기업인 아마존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만 매년 100억달러를 투자 중인 현실을 고려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지금은 국운을 걸고 AI에 집중할 시기다. AI는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아닌 국가 존망의 문제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신 규제'라는 회귀적 틀에서 벗어나 '시장주도형 규제'와 'AI 진흥'이라는 미래지향적 목표를 가져야 한다. 시장은 '통신인프라 진화'라는 시각을 넘어 '국가 AI 인프라 혁신'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소버린 AI, AI 반도체 등 당면한 과제에 정부 정책과 민간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통신은 우리나라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를 이어받아 '국가사회의 정보화'를 이끈 주역이다. 이는 '국가사회의 AI화'라는 새로운 역사적 사명 앞에서 통신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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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 dysylee@korea.ac.kr

〈필자〉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으며, 국무총리 소속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 및 범정부 마이데이터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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