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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캐시 박 홍 “젠더 갈등, 여성에 대한 ‘역사적 폭력’ 트라우마 인정·극복되지 않아 생긴 것”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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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캐시 박 홍 UC버클리대 교수·김지혜 강릉원주대 교수

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 대담에서 ‘모범 소수자’ 신화를 언급했다. 모범 소수자는 근면하고 우등하며 사회적 성공을 이룩한 소수자를 뜻한다. 미국계 아시아인들 사이에 자리 잡은 모범 소수자 신화는 다른 소수 인종을 낮춰보는 차별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모범 소수자는 박 홍 교수의 책 <마이너 필링스>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이날 박 홍 교수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의 대담에서는 역사적 맥락과 제도 속에 담긴 ‘차별’을 둘러싼 이야기가 오갔다. 박 홍 교수는 모범 소수자 신화의 제도적 근원을 살펴봐야 한다면서 “미국은 (아시아인의) 아메리칸드림을 이야기하지만 (미국에서) 아시아인의 성공은 미국의 이민정책 때문에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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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와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에서 대담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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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홍 교수는 미국은 1965년 이후 의사나 공학자 등 고등교육을 받은 아시아계 이민자를 선별해 받으면서 아시아인 사이 모범 소수자 신화가 커졌다고 본다. 일종의 ‘선발효과’가 미국의 이민정책에도 작용했다는 취지다. 박 홍 교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인을 가려 받았기 때문에 성공 사례가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박 홍 교수에게 “제도가 어떻게 인종주의를 만드는지 통찰을 주신 것 같다”며 한국의 이주노동자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올 수 있는 국적을 16개로 제한한다”며 “주로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인데, 한국에선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온 분들은 곧 ‘이주노동자’라는 관념이 자리 잡혀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쓰는 나라는 많지만 한국에선 영어교사를 할 수 있는 곳은 미국 등 7개 나라 국적자로 한정됐다”며 “이런 제도를 잘 모르면 현상적으로 인종·출신 국가에 따라 계급적, 직업적 특성을 갖게 된다고 오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박 홍 교수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례로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을 꼽았다. 그는 “AI와 알고리즘을 만드는 엔지니어의 대다수가 백인 남성인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책 입안자도, 기관도, 제도도, 대학도, 기업도 마찬가지로 누가 운영하는 주체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박 홍 교수는 제도와 법으로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항상 걸림돌과 지연이 발생하기 때문에 ‘문화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육·세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도적으로 제공하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아 보인다”며 “그 이유 중 하나가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라고 생각한다. 여성을 설득할 게 아니라, 남성에게 ‘평등한 파트너가 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밝히는 게 금기시되는 것 같은데 매우 놀랍게 다가온다. 일종의 마녀사냥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며 “오래 걸리겠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화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김원진 기자 onejin@khan.kr



캐시 박 홍 “젠더 갈등, 여성들의 ‘역사적 폭력’ 트라우마가 인정되지 않아 생긴 것”


“여성 혐오 등 여러 혐오는 결국 권력들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혐오를 조성해) 그들이 소유한 재원과 자본의 독점에서 사람들이 눈 돌리도록 하죠. 이들의 얘기를 계속 들으며 설득당하면 우리는 고통의 원천이 아니라 고통을 함께 겪고 있거나 함께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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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영문과 교수가 2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경향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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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마이너 필링스>의 저자이자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캐시 박 홍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2024 경향포럼> 첫 번째 세션 ‘다양성과 포용의 리더십’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 교수는 2021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문학에서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플랫]“인간이 가끔 엉망일지라도···차별에 맞선 싸움은 계속된다”

박 홍 교수는 서구 제국주의나 백인 우월주의 등으로 사회에 분열이 만들어지면 억압받는 사람들이 억압에 익숙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성차별, 인종차별, 제국주의 등은 결국 자기 자신을 혐오하도록 한다. 이런 혐오와 차별이 어떤 심리적인 영향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문제의 원천은 나를 고립시키는 사회이고, 그러한 인식은 집단 행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이것이 마이너 필링스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 <마이너 필링스>는 미국 사회 내에서의 분열을 다룬다. 홍 교수는 “부모님은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미국도 분열된 나라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흔히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미국 사회는 사실 “흑인과 백인으로 오랫동안 분열된 사회”였다는 것이다.

<마이너 필링스>는 아시아계 미국인이 미국 내 어떤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본다. 홍 교수는 “백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모범적인 집단이라고 주로 칭한다. ‘흑인보다는 우리가 낫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라며 “결국 흑인, 백인과 인종적인 3자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백인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문화적, 인종적 이유로 동화될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로 규정하면서 시민 구성원으로부터 배척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더이상 수적으로도 다수가 아닌 백인들이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정치에 투영하고 있다”고 봤다.

2021년 <마이너 필링스>를 출간한 현재 그는 한국 사회의 분열에 집중해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은 이 소설은 한국과 재미 교포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기자로,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당신 어머니가 겪는 고통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을 던진다. 홍 교수는 “해는 어머니가 경험한 고통의 근본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연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북한 테러리스트로 알려진 김현희나 김정일이 1970년대 납치했던 신상옥·최은희의 딸을 인터뷰하는 등 냉전에 이용당한 여성들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여성들의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혐오와 맞붙어있다. 이 소설은 해가 현대의 서울에 오면서 마무리가 된다. 홍 교수는 “해는 서울에서 ‘젠더 갈등’을 목격하게 된다”며 “이 갈등은 여성들이 역사적으로 당해온 젠더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에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해는 아이를 낳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많은 젊은 여성들이 같은 다짐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홍 교수는 “유교적 가부장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여성들을 비판하고 반대한다”며 “한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역사적 폭력의 트라우마가 이 사회에서 인정되지도, 극복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홍 교수는 이 두 책을 비롯해 여러 글을 집필하면서 “작가로서 공감의 능력을 통해서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 변화하는 주변부에 존재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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