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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입생로랑 뒤집어보라…'숨은 실세'는 한국 기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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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콜마·코스맥스, ODM 신화의 비결



■ 경제+

국내 화장품 업계의 대표적인 빅2는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2024년 ‘뷰덕(뷰티덕후, 화장품 마니아)’의 머릿속은 다르다. 국내 중소형 뷰티 브랜드의 제조 파트너인 ‘코스맥스’ ‘한국콜마’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중소형 뷰티 브랜드 이전에, 두 회사는 글로벌 기업들의 제조 파트너로 먼저 활약했다. 랑콤·입생로랑 등 프랑스 유명 뷰티 브랜드를 아우르는 글로벌 1위 로레알, 맥·라메르 등 브랜드를 보유한 에스티로더의 제품 용기 뒷면에는 제조사로 이들 이름이 쓰여 있다. 용기를 ‘뒤집어야 보이는’ 이들은 어떻게 글로벌 시장을 점령했을까.



유통까지 다 할 욕심 버리고 명품 화장품 ‘파트너’ 활약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아마존에선 K뷰티의 인기가 뜨겁다. 한류 영향력이 커지고 유튜브, 틱톡 등 SNS를 타고 중소형 화장품 업체의 글로벌 히트 상품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조선미녀 선크림, 아임프롬 토너, 티르티르 쿠션 등은 할인 기간엔 없어서 못 팔 정도. 이 화장품들을 만드는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조용히 웃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계에 ODM(제조사 개발생산) 개념을 처음 도입한 한국콜마, 글로벌 톱 20 화장품 업체 중 18곳의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코스맥스는 이제 K뷰티의 양대산맥이다.

중앙일보

차준홍 기자


제품 개발부터 생산, 유통까지 혼자 다 할 수 있는 화장품 업체는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애경산업 등 일부 대기업뿐이다. 자체 생산시설이 없는 중소형 브랜드사는 상품 기획과 마케팅에 주력하고 제품 개발·생산은 ODM 업체에 의뢰한다. 생산만 대행하는 파운드리 업체(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와 달리 제품을 개발해 고객사에 제안하는 것이 ODM 업체의 경쟁력이다. 각종 특허 기술과 뷰티 트렌드를 꿰고 있어 중소 브랜드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준다.

미국·일본의 화장품 산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던 1990년대, 한국콜마와 코스맥스는 화장품 판매와 개발·제조의 분업 시스템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 한국 뷰티 ODM 시장을 개척한 두 회사는 출발도, 성장사도 닮았다.

중앙일보

김경진 기자


창업주인 윤동한(77) 콜마홀딩스 회장과 이경수(78) 코스맥스그룹 회장은 모두 대웅제약 출신이다. 1974년 입사해 1990년 대웅제약 부사장을 지낸 윤 회장은 1990년 한국콜마를 세웠고, 1981년 대웅제약에 입사한 이 회장은 1992년 마케팅부 전무직을 내려놓고 1992년 한국미롯토(코스맥스의 전신)를 만들었다. 두 회사의 연구 방식과 품질관리 기준은 제약업계와 유사하다. 한국콜마는 1994년 제약업계의 품질관리 기준(GMP)을 화장품 업계에 도입(CGMP)했고 코스맥스도 1998년 같은 인증을 받았다. 매출액의 5~7%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도 제약사 DNA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김경진 기자


둘 다 일본 회사와 손잡고 출발했다. 당시 미국 ODM 업체인 콜마는 각국 현지 기업과 기술·브랜드 제휴를 맺고 로열티를 받았는데 윤 회장은 일본 콜마와 합작해 ‘한국콜마’를 세웠다. 일본 콜마의 주력 상품이었던 기초 화장품 중 토너(스킨)를 생산하며 빠르게 자리 잡았다. 창업 32년 만인 2022년에는 콜마 본사로부터 브랜드를 아예 인수해 왔다. 이제 전 세계에서 콜마 이름을 쓰는 곳은 한국콜마뿐이다. 코스맥스 이 회장은 일본 미롯토와 기술제휴를 맺고 ‘한국미롯토’로 출발했다. 그러다 1994년 제휴 관계를 끊고 사명을 코스맥스로 변경했다. 코스맥스는 글로벌 OEM 수요가 많았던 색조 화장품 생산 역량을 축적했다.



두 창업자 모두 제약 출신…‘일본과 제휴→독립’ 닮아



외환위기 직후였던 2000년대가 되자 주머니가 가벼운 소비자를 겨냥해 미샤·더페이스샵 등 저가 화장품 브랜드의 ‘로드숍’ 시장이 열렸다. 대형 OEM 업체들은 로드숍 열풍을 일시적 유행으로 생각해 생산라인을 쉽게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 침체로 매출이 50% 이상 급감했던 코스맥스는 로드숍을 기회로 보고 ODM 사업으로 본격 전향했다. 글로벌 ODM 인터코스와 기술 제휴로 2003년 색조 화장품 개발에 뛰어든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했다. 한국콜마는 2012년 미샤의 ‘타임 레볼루션 더 퍼스트 에센스’가 큰 인기를 끌며 기회를 잡았다. 일본 화장품 업체 SK-Ⅱ의 ‘피테라 에센스’가 인기를 끌자 미샤와 손잡고 미투 제품을 개발·생산한 것이다. 유명 제품의 ‘저렴이 버전’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2012년 5% 수준이었던 한국콜마의 영업이익률이 2015년 11%로 오르게 된 계기다.

중앙일보

김경진 기자


쌍둥이 같던 두 회사의 행보가 달라진 건 비교적 최근이다. 2018년 2월, 한국콜마가 CJ그룹의 제약 계열사인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1조3100억원에 인수하면서다. 화장품과 제약·바이오의 기반을 둔 종합 헬스케어 회사로 성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창업주의 장남인 윤상현 한국콜마 부회장은 당시 “R&D 역량을 적극 확충해 향후 10년 내 신약 개발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해 코스맥스도 의약품·화장품 원료를 생산하는 투윈파마(현 코스맥스파마)를 인수했지만, 여전히 중심은 화장품이다.

2000년대 들어 코스맥스에 주도권을 내준 한국콜마는 사업 다각화로 변화를 맞이했다. CJ헬스케어 인수로 제약·바이오사업의 기반을 마련했고, 건강기능식품(건기식) 사업에도 날개를 달았다. HK이노엔은 CJ헬스케어 시절 제조했던 숙취해소제 ‘컨디션’ 시장을 더 키우고, 음료 ‘헛개수’를 앞세워 지난해 828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룹 전체 매출(2조1554억원)의 약 40% 규모로, 이 자회사만 봐도 한국콜마에 인수되기 전 매출(2017년 5368억원)보다 50% 이상 성장했다.



‘ODM 양강’ 이젠 2세 대결…제약+화장품 ‘건기식’ 타깃



한국콜마는 화장품 사업 수직계열화를 위한 M&A에도 적극적이다. 화제가 된 건 화장품 용기 제조사 연우 인수(2022년)다. 연우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LG생활건강 ‘후’ 등 국내 주요 브랜드의 용기 제조사로, 글로벌 기업 50여 개와도 거래 중이다. SNS로 유명해진 스킨케어 브랜드 ‘드렁큰 엘리펀트’, Z세대에게 인기인 ‘버블 스킨케어’ 등 미국 인디 브랜드 수주가 늘며 올해 1분기 수출이 전년보다 44% 증가했다.

코스맥스는 해외 뷰티 박람회를 훑고 다닌 끝에 2004년 로레알의 계약을 따낸 게 성장의 발판이 됐다. 글로벌 1위 로레알은 2년간 생산설비, 품질관리 등 분야별 실사를 진행한 후에야 제조를 맡길 만큼 기준이 높았다. 그해에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저품질-저가 현지 브랜드가 넘쳐나던 중국에서, 소량의 제품도 고품질로 저렴하게 개발·생산해 주는 제조 파트너로 떠올랐다. 2013년에는 인도네시아와 미국의 로레알 공장도 인수해 북미, 동남아에 이어 멕시코·브라질 등 남미로 거래처를 확장했다.

제품 개발부터 생산, 뷰티 트렌드까지 꿰고 있는 ODM 업체가 직접 화장품 브랜드를 내놓는다면 성공할까. 유수의 화장품 브랜드를 고객사로 둔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공식적으로 “자체 브랜드 육성 계획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학과 교수는 “지금은 고객사들이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겠지만 이미 내놓은 브랜드를 중심으로 때가 되면 공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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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이수정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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