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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진짜 '일타 강사'도 반한 '졸업'의 명강사, '10초짜리 단역 배우'였다...학원 드라마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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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소재 콘텐츠 제작 바람]

"진짜 '국어쌤' 아냐?" '졸업' 신스틸러 김송일
"이광수 '무정' 읽고 딸·아내 앞서 강의해 봐"

일타 강사에 무릎 꿇는 학원 원장...
현실적 '학원 누아르' 등장

'대치 스캔들' '일타 스캔들' 등
1년 새 학원물 4편 이상 제작·기획

학생들 짝사랑 상대, 교사에서 강사로...
'사제 로맨스' 공식도 바뀌어
공교육 무력화 속 강사가 '교육 아이돌'로
"청소년이 처음 접하는 자수성가 상징"

한국일보

드라마 '졸업'에서 표상섭(김송일)이 학원에서 수강생을 불러 모으기 위해 국어 무료 강의를 하고 있다. 문학 사조를 주제로 한 이 강연은 지난 16일 10여 분 동안 방송됐다. 교육방송(EBS)이 아닌 드라마에서 파격적 시도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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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멋진 수업이었습니다."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사회탐구 '스타 강사'로 통하는 이지영씨는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드라마 '졸업' 영상에 이런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였던 표상섭이 학원 강사로 옮겨 수강생을 불러 모으기 위해 문학 사조를 주제로 강의한 에피소드였다. 강의 장면은 지난 16일 10분 넘게 방송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배우를 데려와야지, 진짜 '국어쌤'을 데려왔네" 등의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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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사회탐구 유명 강사인 이지영씨가 유튜브에 올라온 드라마 '졸업' 강의 영상에 단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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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일타 강사' 이지영씨. SBS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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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대치동 '일타 강사'의 등판

한류 청춘스타들의 뜨거운 멜로 연기도 아닌 강의 연기에 시청자와 실제 강사가 환호한 배경은 이랬다. 표상섭은 동요 '집 보는 아기의 노래'의 후렴 "고추 먹고 맴맴~ 달래(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담배에서 달래로 가사가 바뀜) 먹고 맴맴~"을 부르며 강단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이런 상황 설명과 함께였다. 'TV도 없던 시절 동요 속 아이는 혼자 집에 남겨졌다, 심심해 마당에 널려 있던 고추를 먹고 방에 있던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다가 맵고 독한 맛에 놀라 몸을 가눌 수 없어 제자리를 맴돈다...' 단순 암기가 아닌, 이야기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를 상상하게 해 작품을 이해하게 만드는 방식의 교육이었다.



표상섭을 연기한 배우는 김송일(49). '졸업'의 안판석 PD의 전작 '풍문으로 들었소' 마지막 회에 법무법인 대표 한정호(유준상)의 가사도우미로 10초도 채 나오지 않은 단역 연기자였다.

이 긴 강의를 김송일은 어떻게 준비했을까. "이광수의 '무정' 관련 내용이 강의 장면 대본에 나와 먼저 그 책을 사 읽었어요. 대본을 수없이 묵독했고요. 촬영 전 네 살 난 딸과 아내 앞에서 이 강의를 했어요. '집 보는 아기의 노래'를 설명하면서 아이가 곰방대로 담배를 태울 때 그 연기를 입으로 들이마시고 크게 내쉬는 식으로 연기했더니 아내가 그러더군요. '아이가 뭔지 모르고 피워 본 건데 그렇게 퇴폐적으로 피우면 어떡해?'라고요. 금붕어가 뻐끔뻐끔하는 식으로 바꿔 연기했죠."

지난 25일 한국일보와 전화로 만난 김송일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극에서 이 강의를 마친 표상섭은 '앞으론 시험에 나오는 문제나 콕 짚어주라'며 학원 원장(서정연)의 비아냥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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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졸업'에서 이준호(왼쪽·위하준) 강사와 서혜진(정려원) 강사가 '사제 출격'이란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둘은 학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사이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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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어떤 존재인가?" '나는 솔로'보다 높은 화제성

'졸업'은 이렇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수업 방식을 고민하는 교사와 학원 강사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 속 교육의 문제를 들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교육이 상급학교 진학과 기득권 유지·편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에서 '졸업'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고 스승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되묻는다"고 짚었다. 드라마가 조명한 학원가는 살벌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정글'이다. 학원 원장은 '일타 강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어떤 강사는 같은 과목 동료 강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그의 10년 치 수업 자료를 빼돌린다. 이처럼 '졸업'은 "로맨스가 아니라 학원 누아르"란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 시청자를 늘려 가고 있다. 시청률은 4~5%대로 높지 않지만, 온라인 화제성은 연애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 등을 제치고 이달 셋째 주 TV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 통틀어 두 번째(펀덱스·25일 기준)로 높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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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치동 스캔들'에서 그룹 원더걸스 출신 배우 안소희는 국어 강사로 나온다. 스마일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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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정경호는 수학 '일타 강사'를 연기했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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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안소희·정경호의 공통점

요즘 K콘텐츠 시장에선 '졸업'처럼 학원가를 다룬 드라마와 영화 제작이 잇따른다. 최근 1년 새 공개되거나 기획 중인 드라마와 영화가 4편 이상이다. 그룹 원더걸스 출신 배우 안소희가 대치동 학원 국어 강사를 연기한 영화 '대치동 스캔들'(19일 개봉)을 비롯해 드라마 '대치동 1들의 전쟁(기획 중·가제) 그리고 전도연·정경호가 출연해 인기를 끈 '일타 스캔들'(2023) 등이다. '사교육 공화국'을 풍자해 신드롬급 화제를 모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2018)의 흥행을 계기로 입시 학원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부쩍 늘고 있는 양상이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 학생과 학부모들에겐 학교보다 학원이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더 현실적인 공간"이라며 "교육이란 국민적 관심사에 로맨스와 계급 문제 등을 녹여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시청자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소재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제지간의 사랑, 이제 '학교' 아닌 '학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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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졸업'에서 이준호(왼쪽·위하준)와 서혜진(정려원)은 고교 시절 학원에서 제자와 스승으로 만났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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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로망스'(2002)에서 김하늘(왼쪽)과 김재원은 학교 선생과 학생으로 사제 로맨스를 그렸다. MBC 제공


입시 학원이 대중문화 콘텐츠 속 주요 공간으로 각광받으면서 학원물의 공식도 달라졌다.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이 대사로 유명한 드라마 '로망스'(2002)처럼 제자의 사랑은 그간 주로 학교 선생님을 향했지만, 이젠 학원 강사로 옮겨갔다. '졸업'의 남자 주인공 이준호(위하준)는 고교 시절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강사 서혜진(정려원)에 사랑을 고백하고 연인이 된다.

이런 변화는 공교육이 점점 무력화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일타 강사가 입시 교육 현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아이돌처럼 여겨지면서 로맨스의 새 주인공으로 떠오른 것이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인터넷 강의에 친숙한 10~30대에게 일타 강사는 사회에서 처음 접한 자수성가의 상징"이라며 "'수저 계급론'에서 벗어나 개인의 힘으로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 걸 알게 되면서 환호하고, 친숙해서 더 열광하는 것"이라고 변화를 바라봤다. 김헌식 중원대 사회문화대 특임교수는 "'의대 열풍'이 거센 입시 현실에서 상당수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 교사보다 일타 강사가 대학 진학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믿는다"며 "그 관점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스타로 떠오른 일타 강사가 학원물의 새로운 로맨스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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