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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칼럼] 6·25에 돌아보는 K-방산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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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일 한국 정부를 겨냥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전날 북한과 냉전 시절의 군사동맹 관계를 복원하는 조약을 체결, 한국이 대응 조치를 시사하자 즉각 보복 경고를 한 것이다.

이런 러시아의 호들갑은 역으로 우리의 국방력과 K방산의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동유럽에 수출된 우리의 최첨단 정밀 무기에 강대국 러시아가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다는 반증이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무기 제공에 관한 다양한 옵션이 있으며, 러시아의 대응에 따라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시곗바늘을 33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991년 소련(USSR)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우리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러시아가 돈 대신 최신 무기와 기술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이것이 바로 1995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무기 도입사업인 '불곰사업'의 시작이었다. 당시 최신 무기는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것이 엄격히 통제됐기 때문에 우리나라에겐 정말 좋은 기회였다.

'불곰사업'을 통해 우리나라는 러시아의 뛰어난 무기 기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K방산의 기술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러시아의 T-80U 전차 기술을 바탕으로 K2 전차가, BMP장갑차 기술은 K21 장갑차 개발에, METIS-M 대전차미사일 기술은 현궁 대전차미사일(보병용 중거리 대전차 유도 무기) 개발에 활용됐다.

K방산의 뿌리는 1950년 한국전쟁과 닿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북분단과 동족상잔의 아픔이 자주국방에 대한 열망과 국산무기 발전을 격발시켰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일까. 6·25전쟁은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자주국방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했다.

냉전시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은 늘 우리를 옥죄었다. 특히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2만명 철수 결정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가 됐다. 박정희 정부는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 방위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973년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에 집중했고, 이는 훗날 K방산의 든든한 뿌리가 됐다. 규모가 크고 첨단기술이 필요한 자동차, 조선, 철강, 기계 등 중화학공업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초산업으로 이것이 발전하면 경제 전체가 튼튼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렇다면 왜 중화학공업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무기'에 있다. 특히 전차, 자주포, 전투기 같은 강력한 무기를 만들려면 중화학공업의 기술과 시설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 국산 무기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주국방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적으로 발전 초기 단계였고, 기술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업들의 노력,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중화학공업은 빠르게 성장했고, 마침내 우리 손으로 만든 국산 무기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중화학공업 육성은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기술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쌓아올린 기술력과 경험은 오늘날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밑거름이 됐다.

실제 지난달 공군학사장교회 산업시찰단의 일원으로 'K방산의 맏형'격인 경남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찾았을 때 실로 많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현장에서 헬기와 훈련기, FA-50 경공격기 등 다종다양한 항공기 실물은 물론 제작 과정을 살펴보며 "소총 한 자루 못 만들던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다니…" 격세지감과 함께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뭣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눈물과 피땀의 결정체' KF-21 전투기. KF-21은 전장 16.9m, 전폭 11.2m로 최대 속도는 마하 1.82, 최대 항속거리는 2900㎞로 알려져 있다. KF-21은 세계에서 8번째로 개발한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다는 자체 전투기 개발에 뜻을 둔 지 꼬박 20년 만에 이룬 쾌거다.

2022년 KF-21 시제기(試製機) 개발 성공은 국산 항공기로 자주국방의 한 축을 담당, 강군으로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함께 해외 전투기 개발 및 성능개량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 미래 항공우주시장의 선전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KF-21이 이번 달부터 본격적으로 양산 체제에 들어갔는데, 예정대로라면 2026년 양산 1호기가 생산돼 영공 수호 임무를 맡게 된다.

최근 몇 년간 K방산은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폴란드, 아랍에미리트(UAE), 루마니아 등과 대규모 무기 수출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무기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K2전차, K9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한국산 무기들은 가격 경쟁력은 물론 뛰어난 성능, 신속한 납기(納期), 현장 적응력 등 높은 신뢰도로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불안이 심화하면서 K방산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물론 K방산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세계 각국의 방위산업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기술개발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K방산의 저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도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K방산은 이제 단순한 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 동력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과 기업들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더해진다면, K방산은 더 높이 날아오를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류석호 칼럼니스트, 전 조선일보 영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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