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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7 (수)

1170명 숨진 메카 ‘폭염 참사’에 “우리 책임 없다”는 사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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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관리 책임에 실패하지 않아” 입장

순례객들은 당국의 현장 대응 부족 지적

경향신문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 인근에서 순례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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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성지순례(하지) 기간을 맞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이들 중 1170여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가운데 사우디 당국이 책임을 부인했다.

21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사우디 고위 각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가는 관리 책임에 실패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이 위험을 간과하는 오판을 한 것”이라며 “극심한 폭염과 힘겨운 기상 조건이 낳은 사태”라고 밝혔다. 이는 사우디 정부가 올해 하지에서 발생한 ‘폭염 참사’와 관련해 처음 내놓은 입장이다.

‘폭염 참사’ 외면하는 사우디…순례객들은 “대응 부족했다”


지난 14일 하지가 시작된 이후 사우디에서는 1170명이 숨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집계했다. AFP통신도 메카 인근 병원의 영안실 현황 등을 집계해 최소 1126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온열질환으로 입원했거나 실종된 이들도 수백 명이 넘는 상황이라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압사 사고로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던 2015년 하지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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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사우디를 찾은 무슬림 순례객들이 메카에서 열린 성지순례 의식에 참석한 가운데 한 남성이 더위에 지쳐 쓰러져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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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사망 원인은 한낮 기온이 52도까지 오른 폭염이었다. 하지는 매년 이슬람력 12월7~12일에 치러지는데, 올해 하지는 여름인 지난 14~19일까지 이어졌다. 불볕더위 아래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다.

그간 사우디 당국은 사망자 현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순례자 2000명이 온열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밝힌 뒤로는 이 수치도 갱신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각국 정부와 언론을 통해 사망자 수가 나오자 사우디 정부가 순례자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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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사우디 구조대원들이 메카를 방문했다 더위에 지쳐 쓰러진 한 순례객을 들것에 실어 옮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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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에 다녀온 순례객들은 당국의 현장 대응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70세 아버지와 함께 하지를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온 40대 순례객 지라르 알리는 “순례객은 엄청나게 많은 데 비해 의료진은 부족했다. (당국은)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고 나서야 개입하려는 느낌이었다”며 “사람들이 쓰러지는 건 흔한 광경이었고, 순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CNN에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순례객 아흐마드(44)는 “수많은 순례자가 죽어 있는 것을 봤다. 거리에는 수백 m마다 흰 천으로 덮은 시체가 있었다”면서 “지역 주민들이 물을 나눠줄 때마다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의료 대원이나 구급차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피해 컸던 미등록 순례자…왜?


미등록 순례자에게 냉방 시설 등을 제공하지 않아 피해가 커진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는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이상 행해야 하는데, 사우디 당국은 성지순례비자(우므라) 발급 인원을 180만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관광 비자 등을 통해 입국한 뒤 메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위급 상황에 처하거나 사망했을 때 각국 정부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올해 허가를 받은 인원 180만 명 외에도 40만명의 미등록 순례자가 메카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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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성지순례 기간을 맞아 지난 15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아라파트산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설치된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분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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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우디 당국이 일부 미등록 순례자들에게도 하지 참여를 허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겐 에어컨 등 냉방 시설을 제공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일한 교통수단인 순례 버스와 의료 시설 이용도 허용되지 않아 미등록 순례자들은 뙤약볕 아래서 수 ㎞를 걸어 이동했다.

전문가들은 사우디 당국의 대응이 미등록 순례자들의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영국 버밍엄대학교 사우디정치전문가 우머 카림 박사는 “정식 비자를 받지 않은 순례자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당국이 분명 이들에게도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면서 “그랬다면 일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올해 하지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미등록 순례자였다.

한편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이집트는 미등록 순례객의 방문을 허용한 대행사 16곳에 운영 중단을 명령하고 검찰 조사에 착수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집트에서 메카를 찾았다 숨진 순례객은 658명으로, 이 중 미등록 순례자는 63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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