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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6 (화)

한밤, 길가에 누워 잘 수 밖에 없다…폭염 덮친 쪽방촌의 6월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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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1일 오후 1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 모습. 쪽방촌 주민들은 폭염을 피해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골목으로 나왔다.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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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북반구에서 낮의 길이가 가장 긴 하지(夏至)인 21일, 서울에는 오전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이날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위치한 쪽방촌 길목에는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려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5년째 살고 있다는 주민 김상배(가명·70대)씨는 2년 전 이동형 에어컨을 자비로 마련했다. 실외기가 없는 40만 원짜리 소형 에어컨이지만 김씨에게는 든든한 자산이다.

김씨가 사는 방으로 가려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지나야 한다. 술을 마시고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진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한 평짜리 방 한쪽에는 에어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이동형 에어컨이 가동되자 방 안 공기가 차가워졌다. 김씨는 에어컨 사용료로 기존 월세에 1년에 25만원을 더해서 내고 있다. 방세는 비싸졌지만 만족도는 크다. 이동형 에어컨을 설치하기 전까지 김씨는 밤마다 열대야에 시달렸다. “방에 화장실도 없으니 샤워도 못 하고. 팬티까지 벗고 싶은 마음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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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김상배(가명, 70대)씨의 방에 이동형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다. 이동형 에어컨 사용료 때문에 방세가 1년에 25만원 더 비싸졌지만 만족도는 크다. 김씨는 2년 전 이 기계를 40만원에 구입했다. 김씨는 4년 전 여름 온열질환으로 병원에 실려간 경험이 있다.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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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동자동 주민 박정만(가명·70대)씨도 최근 집에 에어컨을 달았다. 집에 에어컨이 있는 집은 박씨가 사는 건물 전체를 통틀어 박씨가 유일하다. 박씨는 “낡은 건물이다 보니 자비로 계량기까지 사서 설치했다”며 “에어컨보다도 설치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한 주민들은 온몸으로 무더위를 견디고 있다. 에어컨이 한 대도 없는 건물에 산다는 동자동 쪽방촌 주민 이민재(가명)씨는 “쪽방촌 4층에 거주 중인데, 열대야가 찾아오면 옥상에 설치된 나무 평상에서 옷을 홀딱 벗고 널브러진 채 잠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방 안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일부러 길가에 돗자리를 펴고 잠이 든다”고도 말했다. 실제로 쪽방촌 구조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건물들이 마주 보고 있는 데다 건물 내부 역시 방으로 촘촘하게 들어차 환기가 거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22년부터 쪽방촌 에어컨 무료 설치 대책을 내놨지만 재개발 논의가 진행 중인 동자동 쪽방촌의 경우 전체 820세대 중 공용 에어컨은 26대에 불과하다. 주민들이 온열 질환에 노출될 우려가 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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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주민 박수진(72)씨가 ″너무 덥다″며 연신 부채질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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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30도를 넘은 정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쪽방촌 입구 슈퍼 앞에는 처마 밑 쿨링포그(안개형 냉방장치)를 쐬러 나온 노인들이 간이의자에 일렬로 앉아있었다. 이날 사랑방 점심 메뉴는 짬뽕. 이열치열(以熱治熱)도 무더위를 쫓지 못했다.

“더워 죽겠어.” 윤규동(64)씨가 더는 못 버티겠다는 말투로 내뱉었다. 더워도 바깥이 낫다는 윤씨는 “오늘은 그래도 바람도 살살 불고 저기서 안개 같은 것도 나오니까 시원하다”고 말했다. 쿨링포그가 2분 동안 시원한 안개를 내뿜고, 2분 동안 멈추기를 반복하는 탓에 이들의 시선은 온통 안개가 나오는 노즐에 고정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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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윤규동(64)씨가 방 안 선풍기를 쐬고 있다. 장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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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쪽방촌 주민들은 낮에는 그나마 골목, 사랑방, 쉼터를 돌아다니며 겨우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밤이 더 두렵다. 저녁 7시 쿨링포그마저 꺼지면, 이들은 땀으로 이미 축축해진 몸을 이끌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1평 남짓 쪽방에서 윤씨가 더운 여름을 버텨내는 유일한 수단은 선풍기뿐이다. 윤씨가 선풍기를 틀고 미풍에서 약풍으로 조절하자 ‘덜덜’ 소리와 함께 바람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뜨겁게 느껴졌다. 윤씨는 “밤에 잘 때 더워서 서너번은 깬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땀 범벅”이라며 “창문이라도 뚫려 있으면 좋은데 이게 창고거든요”라며 막힌 창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골목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던 박수진(72)씨는 “밤에 선풍기 틀고 방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여기는 도둑이 엄청 많아서 걱정된다”면서도 “그냥 문을 열어놓고 문 쪽에 머리를 대고 자기로 했다”고 말했다. 문을 열면 각종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숨 막히는 더위에 어쩔 도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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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골목에서 주민들이 쿨링포그(안개형 냉방장치)를 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장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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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세대가 거주하는 돈의동 쪽방촌에도 95대의 공용 에어컨이 설치돼있다. 하지만 실외기를 달 수 없는 건물에는 설치가 안 된 데다 에어컨을 켜고 끌 수 있는 권한을 한 명의 집주인이 쥐고 있기 때문에 혜택을 보지 못하는 주민들이 있는 상황이다. 돈의동 쪽방 상담소 관계자는 “7~8월 폭염 집중 기간에는 종사자들이 리모컨을 갖고 다니며 강제로 틀기도 한다”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상담소 남병철 과장은 “올해 더위가 일찍 와서 원래 6월부터 시작하던 여름철 특별 보호 대책을 5월 20일부터 시작했다”며 “온기 창고를 열어 일주일에 생수 50병을 살 수 있는 포인트(1만 포인트)를 주민에게 제공하고, 온열 질환 위험성이 높은 밤에 세 번 정도 마을을 순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에어컨 설치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쪽방촌은 개별 소유주가 있기 때문에 건물주나 관리인의 동의를 받아야 에어컨 설치를 할 수 있다”며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거나 건물이 노후화되다 보니 여러 대의 에어컨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있어 승압 공사까지 하며 에어컨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재개발 때문에 에어컨 설치가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주민 수가 많아지면 사업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어 건물주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에어컨 대신 쿨링포그 설치, 야간 더위 대피소 운영 등으로 온열 질환을 예방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혜연, 장서윤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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