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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美-中 이어 러까지… 강대국 오가는 베트남 ‘대나무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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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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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문까지 이끌어내며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의 성공을 보여줬다.”

북한을 당일치기로 방문한 푸틴 대통령이 곧장 베트남에 국빈방문하며 다시 한번 베트남의 중립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베트남은 푸틴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도 잇달아 성사시켜 유례없는 외교적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초강대국 지도자들의 방문으로 실질적인 과실도 있었다. 지난해 9월 바이든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양국 관계의 ‘전략적 동반자’ 격상을 이끌었다. 3개월 뒤 12월 시 주석은 베트남과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베트남에 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미 CNN 방송은 “현재 세계에서 미국과 중국, 러시아 지도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이 거의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 굳건한 줄기-유연한 잎 ‘대나무 외교’

푸틴 대통령은 이틀간의 국민방문 첫째 날인 20일 응우옌푸쫑 베트남공산당 서기장과 팜민찐 총리, 또럼 국가주석과 쩐타인만 국회의장 등 베트남 권력 서열 1~4위를 모두 만났다.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원칙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베트남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가 중요 국가로 여기는 곳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역내 안보에 영향력을 미칠 주요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에 푸틴 대통령 집권 기간 5차례를 포함해 2017년 이후 무려 7차례 베트남을 찾았다.

특히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러시아는 베트남,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올해 1~5월 러시아와 베트남 무역 규모는 19억60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로 전년 동기와 대비해 51.4%나 늘었다.

응우옌 서기장은 당초 푸틴 대통령 초청을 주저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베트남 방문을 ‘미국에 대한 외교적 승리’로 선전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중요한 무역 파트너인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의 심기를 거스를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베트남 외교 기조인 ‘대나무 외교’를 발휘해 푸틴 대통령을 초청하기로 했다. 대나무 외교는 2016년 응우옌 서기장이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강대국 간 분쟁에 끼지 않으면서 자립적이며 탄력적인 외교 노선을 취하겠다는 원칙을 대나무에 빗대어 표현했다. 응우옌칵기엉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 객원연구원은 FT에 “베트남은 이 것이 세 나라로부터 모두 이익을 얻을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잘 안다”고 말했다.

● 美 공급망 다양화 수혜, 中최대 투자국

미국은 푸틴 대통령에 정상 외교의 장을 제공한 베트남에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은 17일 성명에서 “어떤 나라도 푸틴의 침략 전쟁을 홍보하고 잔학 행위를 정상화하는 판을 깔아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베트남을 동남아에서 대(對)중국 포위망의 마지막 고리로 여기고 ‘선물 보따리’를 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베트남전쟁 종전 이후 약 50년 만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찾아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미 상무부는 베트남의 무역 지위를 ‘비시장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상향해 베트남 수입 상품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애플 등 미국 기업들도 중국에서 벗어나 공급망을 다양화하기 위해 베트남을 선택하고 있다.

베트남에 공을 들이는 건 중국도 마찬가지다. 전기차 판매 세계 1위 비야디(BYD) 등 중국 기업들은 미국 규제를 피하기 위해 국경을 맞댄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은 베트남에 82억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의 최대 투자국으로 올라섰다.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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