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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북 유사시, 러 핵우산 제공 가능… "푸틴·김정은 레드라인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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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러 정상회담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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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체결한 ‘조(북)·러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서 “어느 한 쪽이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새 조약은 "보유한 모든 수단으로"라고도 명시, 원칙적으로는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원하면 핵 무력 사용까지 포함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동시에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에 포탄·미사일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근거로도 작용하게 됐다.

북한은 20일 관영 매체를 통해 전날 두 정상이 서명한 조약의 전문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조약 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해 지체 없이(without delay)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with all means in its possession)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shall provide)”고 했다.


이는 1961년 ‘조·소(소련)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상호방위조약) 1조의 ‘자동 군사 개입’ 조항이 상당 부분 되살아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소 조약은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했다.

이번 조약에도 무력 침공시 “지체 없이”, “모든 수단”을 활용한 “군사적 및 기타 원조” 등 핵심적 요소를 문안에 넣었다. 특히 군사적 원조에 대한 별도 제한 규정이 없고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라고 돼 있다. 문안만 보면 원칙적으로는 러시아의 핵 전력을 활용한 방어·보복도 가능하다.

김정은으로서는 제손에는 불법적으로 개발한 핵무기를 쥔 채 푸틴이 제공하는 합법적 핵우산을 쓰고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 강화에 맞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일 수 있다. 미 CNN 방송은 "이번 조약에 따라 러시아의 핵 억지력이 북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이후 남북을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가운데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군사 원조 공약을 한 데 주목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이 남한에 대한 영토 점령까지 지시한 상황에서 북·러가 이런 조약을 맺은 건 러시아가 한국을 적성국으로 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핵을 쏘면 미국이 확장 억제 보복을 하고, 다시 이번 조약의 4조 발동에 따라 러시아가 핵으로 보복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북·러가 레드라인을 심각하게 넘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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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쌍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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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해당 조항엔 조·소 조약과는 달리 ‘유엔 헌장과 북·러의 국내법에 준해’라는 단서가 달렸다. 명시적으론 자동 개입 의무를 지는 것은 피해갈 여지를 남겼다. 참전 등에는 러시아 연방 상원의 의결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가 이를 개입하지 않는 근거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확하게는 러시아가 한반도 개입의 ‘선택권’을 보유하게 된 셈이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런 ‘브레이크 조항’들을 근거로 러시아는 편의에 따라 이번 조약이 ‘군사 동맹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주장할 수 있다”면서 “불량국가인 북한과 러시아가 조약을 이행하기 위해 어떤 실천적인 행동들을 해나가는 지가 중요하고, 한·미·일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이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새 조약은 3조에서 “어느 일방에 대한 무력침략 행위가 감행될 수 있는 직접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를 상정하고 “가능한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목적으로 쌍무 협상 통로”를 가동하도록 하는 등 절차도 규정했다.

8조에서 “방위 능력을 강화할 목적 밑에 공동 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고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사실상 군사 협력을 제도화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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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규모 군사훈련 중인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모습. 러시아 국방부 영상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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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소 간 체제 경쟁이 격화하던 시기 북한 김일성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전략적 제휴에 따라 맺어졌던 조·소 동맹을 김정은과 푸틴이 수십 년 만에 되살렸다는 평도 그래서 나온다.

여기엔 미국이 태평양 동맹을 활용하며 중·러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러시아 역시 역내 ‘거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일 수 있다. 중·단거리 미사일(사거리 500∼5500㎞)을 모두 폐기하는 미·러 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2019년 종료된 이후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검토 중인데, 러시아는 이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의 전진 배치 미사일이 우리 군의 핵지휘소와 주둔지를 겨냥할 수 있기 때문에 핵 억지력 차원에서 추가적인 조치를 배제하지 않는다”(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5월 언론 인터뷰)면서다.

최근 체제 이완 방지에 심혈을 기울이는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를 새로운 우방으로 삼아 대내외적 리더십 공고화에 나설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묵인 하에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한편 무기 거래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려는 속셈인데, '위험한 조약'의 탄생은 이런 양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61년 조·소 조약과 이를 대체해 2000년 2월 체결한 우호 선린 조약에는 “조선 통일의 평화적 실현”, “한반도 분단 상황의 조속한 종식” 등 평화 통일 원칙이 담겨 있었다. 새로운 조약에선 이런 내용이 빠졌다. 남북관계 단절 조치 중인 김정은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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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북·러 관계사의 분수령"(김정은)이 될 이번 조치에 대응해 한·미·일이 공동 대응을 하는 것은 물론, 유럽 국가들까지 양국의 밀착을 견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미 워싱턴DC에서 개최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북·러의 군사적 협력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와 북한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고 안보리 결의를 정면 위반하는 군사기술 협력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 "방북 결과 전반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평가에 따라 동맹과 우방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와 함께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하고 단호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정·박현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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