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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윤석열 정부 주요그룹 일감 몰아주기 제재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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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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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대폭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21년 12월 사업 기회를 가로챈 혐의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에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 자산순위 상위 20대 그룹에 대한 제재는 한 건도 없었다. 최근 금융회사를 통한 부당지원 등 새로운 형태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만큼 공정위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공정위 사건처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윤석열 정부 임기가 시작된 202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총수 일가 사익편취, 부당지원으로 제재를 받은 기업은 7곳이었다. 사익편취나 부당지원은 총수 일가가 소유한 회사 등을 지원하기 위해 일감을 몰아주거나 사업 기회 등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제재 대상은 주로 부영·호반 등 최근 급성장한 건설사이거나, OCI·세아·한국타이어 등 재계 순위 40위권 밖에 있는 기업이었다. 공정위가 윤석열 정부 이후, 총수 일가 사익편취와 부당지원으로 제재한 곳 중 가장 규모가 큰 기업은 자산순위 26위(지난해 기준)의 부영그룹이었다.

건설사·재계순위 40위권 기업만 조사


이는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제재가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문재인 정부와 대조적이다. 당시 공정위는 삼성·SK·롯데·한화 등 주요 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해 총수 일가 사익편취와 부당지원 등에 대해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했다.

최근 공정위의 소극적인 제재는 더 두드러진다. 공정위가 2023년 9월 세아그룹을 제재한 이후 지난달 한국콜마를 제재하기까지 약 9개월 동안 총수 일가 사익편취와 부당지원에 따른 제재는 없었다. 한국콜마의 경우 과징금 규모가 5억원으로, 수 백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던 과거 다른 사건에 비해 규모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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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현 정부에서 공정위가 사익편취나 부당지원 사건에서 총수 개인을 제재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법원에서 총수가 지시·관여한 사실을 판단할 때 까다롭게 보는 측면도 있지만, 공정위의 규제 의지가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제재가 대폭 줄어든 데는 그만큼 대기업의 대비가 철저해진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한 공정거래법 전문가는 “기업들도 로펌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며 “그만큼 법 위반을 입증하는 공정위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요 그룹들의 승계 작업이 일단락된 측면도 있다. 최근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한 사례를 보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견기업에 집중됐다. 한 로펌 관계자는 “아무래도 이들 기업은 최근에서야 규제 대상이 돼 공정위 조사 대응에 노하우가 부족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기업에 걷는 공정위?


반면 공정위가 제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해 10월 일감 몰아주기에 참여한 사업자의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해 사업자를 고발하는 경우, 이에 ‘관여’한 총수 일가도 원칙적으로 고발한다는 내용의 고발지침 개정안을 추진했다. 그동안 다소 추상적이었던 총수 개인에 대한 고발 기준을 명확히 한 셈이다. 그러나 재계 단체가 크게 반발하면서 결국 고발지침 개정안은 백지화됐다.

여기에 현 정부 들어 정책과 조사 기능을 분리한 이후, 조사보다 정책에 방점을 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국장급 이상 승진자 중 다수가 정책을 총괄하는 경쟁정책국 출신이다. 이에 따라 사건 조사 담당 조직의 ‘베테랑급’ 직원 상당수는 육아 휴직이나 국외위탁 교육 훈련, 자비 유학을 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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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 일대.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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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금융회사를 통한 부당지원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 ‘금융회사를 통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와 총수 일가 소유 금융회사에 대한 계열사 지원행위’를 보면, 계열 금융회사가 발행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을 인수하거나 계열 금융회사가 만든 조합이나 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계열 금융회사의 자금을 확충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 총수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동안 공정위는 대기업 급식·시스템통합(SI) 등 제조업체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를 활발히 했던 것에 비해 금융회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공정위 전직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감시가 소홀했던 금융분야에 대한 공정위의 면밀한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은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계열사를 통한 회사 기회유용과 일감 몰아주기, 자금지원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 강화가 필요하다”며 “대기업집단의 공시의무만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자금지원과 용역거래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만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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