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7 (목)

[리뷰]北 오물풍선 시기와 겹쳐 귀순병사 탈북기 그린 ‘탈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더 나은 미래 꿈꾸는 북한병사 탈북기

군인정신 아닌 ‘자아찾기’ 내세웠지만…

주연 이제훈 북한 사투리 미숙 ‘연기력 지적’

뜬금없이 흐르는 자이언티 ‘양화대교’

아시아경제

영화 '탈주'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귀순 병사의 탈북기를 그린 영화 '탈주'가 다음 달 3일 개봉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과 군사분계선 침범으로 남북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분위기를 고려하지 못한 영화 개봉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화는 탈주를 시작한 북한병사 규남(이제훈 분)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추격전을 그린다. 이종필 감독은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어쩌다 (개봉 시기가) 이렇게 됐는데,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모르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영화는 이데올로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감독의 항변에도 영화는 배경적 설정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꼭 거창해야만 '이데올로기'를 다룬 극이 아니다. 두 주인공은 '북한 병사'와 '북한 보위부 간부'로 설정됐는데, 개인의 신념을 그리고자 했다면 국내 시골 청년으로 설정해도 됐을 터다. 영화가 북한이라는 드라마틱한 배경을 차용했다는 뜻이다.
아시아경제

영화 '탈주'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봉 시기를 떠나 영화로 보더라도 '탈주'는 아쉽다. 영화는 한마디로 '귀순 병사의 탈북기'다. 탈북을 꿈꾸는 주인공 규남은 "내 갈 길은 내가 정할 것"이라고 말하며 남한으로 향한다.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표면적으로 내세우려 했지만,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 규남의 '자아 찾기'라는 당위성을 주입하지만, 앞뒤 설정이 부실해 다소 버겁게 다가온다. 장르적 매력도 부족하다. 두 북한군이 화끈하게 맞붙으리란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영화에는 '힙한' 음악이 흐른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등이 부자연스럽게 삽입됐는데, Z세대(1997~2012년생) 관객을 유입하려는 시도처럼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북한'은 Z세대가 흥미롭게 여기는 코드는 아니다. 1980~1990년대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얻은 낡은 설정이다.
아시아경제

영화 '탈주' 스틸[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다양한 콘텐츠에서 북한 사투리를 사실적으로 구사하는 배우가 넘쳐난다. '탈주'는 북한이 주 무대인 만큼 출연 배우들이 생생하게 사투리를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북한 병사를 연기한 배우 이제훈의 어설픈 사투리 연기는 극 초반 과속방지턱처럼 몰입을 방해한다. 이제훈과 대립하며 능숙하게 사투리를 표현하는 구교환과 톤이 맞지 않아 마치 구멍이 뚫린 듯하다.

탈북을 꿈꾸는 병사의 개인적 신념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제훈은 어째서 목숨을 걸고 남으로 향하는지 깊이 있게 표현하지 못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이제훈의 연기가 아쉽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그의 연기는 전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극 초반에는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탐정의 얼굴을 하다, 추격이 시작되면 드라마 '모범택시'(2021~2023) 김도기 기사가 되고, 후반부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 속 청년이 된다. 그가 전화기를 붙잡을 땐 드라마 '시그널'(2016)이 떠오른다.

배우에게 변주는 필수다. 새로운 얼굴을 끊임없이 드러내며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 이를 통해 계속해서 대중이 배우를 소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제훈은 '탈주'로 연기적 한계를 극명히 드러냈다. 이를 통해 그는 아주 무거운 숙제를 받아들게 됐다. 다음 작품에서는 은행, 공익광고 속 '바른 청년',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꼬마 탐정' 같은 얼굴이 아닌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구교환은 '탈주'의 멱살을 잡고 달린다. 자칫 단편적으로 비칠 법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쌓아 올려 긴장감을 부여했다. 다소 전형적인 설정과 부실한 개연성도 쫀쫀하게 메우는 역할을 한다. 특별출연한 송강의 존재감도 남다르다. 송강과 구교환이 한 장면에 나오면 마치 다른 영화처럼 느껴져 흥미롭다. 깜짝 등장한 배우 이솜과 그의 '모델 친구들'인 이호정, 신현지가 연기한 유랑민들은 기능적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아무리 (의리의) 특별출연이라지만 '북한 유랑민'이라는 설정과 맞지 않아 몰입을 방해한다. 일부의 연기력 미숙도 아쉽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