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주 한경면 고산리 일대 빈집. 집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잡초로 뒤덮여 있다.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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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찾은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일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엔 무성한 잡초로 둘려싸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빈집이 눈에 띈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 곳이 과거에 집이었는지 알기 힘들 정도다. 근처에서 밭일을 하고 있던 주민 A씨(80대)는 “동네 안으로 들어가면 빈집은 더 많이 있다”며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젊은 사람들이 오긴 와도 그만큼 채워지긴 어렵다”고 말했다.
제주도에 ‘빈집’이 늘고 있다. 미분양 된 아파트나 빌라뿐 아니라 리모델링용으로 인기가 있던 단독주택과 농어촌주택의 인기도 사그라들었다. 한때 민박이나 카페 등으로 사용하려는 수요가 있었지만, 제주도 인구가 계속 유출되면서 이 같은 수요마저 줄어든 것이다.
지난 10일 제주 한경면 고산리 일대 빈집. 방치된 채 내부는 주민들의 텃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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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화·인구유출에 텅텅 빈 집들… 빈집 안엔 주민들 텃밭만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진행한 전국 빈집 실태조사에서 제주지역 빈집은 최소 1257채, 그 중에서도 94% 이상은 농어촌 지역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도에서 추정하는 빈집은 2배 이상인 3500채에 이른다.
제주에서 빈집은 한 때 인기있는 매물로 꼽혔다. 2011~2016년 사이 ‘제주살이’ 열풍이 불면서 농어촌주택도 고가에 거래되는 경우가 있었다. 경매시장에서도 단독주택 인기 현상을 볼 수 있었는데, 실제로 지난 2017년 제주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한 단독주택(토지면적 126㎡, 건물면적 92.9㎡)은 감정가는 9247만원 수준이었지만 첫 경매에서 74명의 응찰자가 몰리면서 1억9371만원(낙찰가율 210%)에 낙찰됐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산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빈집이 눈에 띄었다. 마을 주민이 빈집을 빌려 내부에 작물을 기르며 밭처럼 쓰고 있는 곳도 있었다. 고산파출소가 있던 건물 역시 비어있는 채로 방치돼 있었다.
지난 10일 제주 한경면 고산리 일대. 이전에 고산파출소로 쓰였던 건물이 빈집으로 남아있다.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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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민 B씨는 “마을마다 10채씩은 빈집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며 “과거에 비해서 눈에 띄게 늘었고, 여기 살던 분들이 돌아가신 뒤로 인구가 채워지지 않은 채 그나마 있던 젊은 사람들은 제주 시내인 노형동이나 연동 쪽에 몰려 있으니 시골에 (빈집이)점점 더 늘어나지 않겠나”고 했다.
한때는 이런 빈집들을 카페 등으로 꾸미는 수요도 넘쳐났다. 젊은 인구가 찾아오고 관광객 수요도 그만큼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지방 인허가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도에서 252곳의 커피전문점이 문을 닫았다. 올해 1분기에만 80곳의 카페가 폐업신고를 했다. 점점 제주도의 카페가 대형화되고 있다는 점도 빈집을 개조하는 수요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제주도는 청년층과 장년층이 농어촌을 떠나면서 노령화가 뚜렷해졌고, 동시에 빈집도 늘어나는 추세다. 제주 순유입 인구는 한 때 2011년 2343명에서 2013년 7823명으로 늘어난 뒤 2014년 1만명을 넘어선 바 있다. 이후 2016년 1만4632명으로 정점을 찍고난 뒤 계속 줄어 2022년엔 3148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제주도 전출 인구가 전입인구를 넘어섰는데, 인구 순유출이 발생한 건 2009년 이후로 처음이다.
지난 10일 방문한 다자요의 '고산도들집' 외부 전경. 2004년부터 사용하지 않던 빈집을 리모델링했다.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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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빈집 꾸며 숙박시설로 이용하기도… “규제에 한계”
제주도의 빈집문제가 심각해지자 민간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기업도 있다. 제주 전역에 있는 빈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만드는 스타트업 ‘다자요’를 시작으로 스타트업들이 빈집과 유휴시설을 정비하는 사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날 방문한 다자요의 ‘고산도들집’은 지난해 제주 내 9번째로 문을 연 다자요의 숙박 공간이다. 2004년부터 비어있던 집을 2년 전 집주인으로부터 의뢰받아 숙박공간으로 꾸몄다. 실제로 외부에서 봤을 때 마을의 다른 집들과 비교해 숙박업소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로운 모습이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제주도 내 5개 숙소가 내년 1월1일까지 예약이 전부 찼고, 전국에서 빈집을 리모델링해달라는 수요가 오고 있다”며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 일룸 가구 등과 협업해 꾸며놓은 내부가 펜션이나 호텔과는 다르게 ‘집 같다’는 느낌이 들어 찾는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지난 10일 방문한 다자요의 '고산도들집' 내부. 기존 건물의 골조는 남겨둔 채 리모델링 했다.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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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간에서 빈집문제를 전부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우선 농어촌 빈집을 활용해 공유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사업허가를 받았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이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기간은 지난 1월 2026년 1월까지 연장됐다. 정부는 영업일수 300일 제한을 폐지하고 사업장 수도 농식품부와 협의하에 전국 500채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지만 제주도 내에서는 여전히 30채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
한편 제주도는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해 지난 2월부터 오는 12월까지 빈집으로 추정되는 주택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 중이다. 실태조사 대상인 빈집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은 주택을 말한다. 제주도 빈집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 대표는 “현재 농어촌 지역 빈집을 활용한 숙박업의 경우 실증특례사업이다 보니 이전 사례가 없어 지원을 빈집 소유주에게 해줘야 하는건지, 다자요에 해줘야하는건지 등 헷갈려하는 공무원 분들도 계신다”며 “지자체에서 하는 것보다 성공적인 사례일 경우 빈집 수리 비용 등에 대해 행정적인 지원이나 금융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우리와 비슷한 빈집 활용 사업들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방문한 다자요의 '고산도들집' 내부. /오은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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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기자(ons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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