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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오물풍선 대응', 남남갈등은 안 된다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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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 먹히는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
오물풍선은 연초부터 계획된 신형 도발
북한 심리전 노림수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국일보

서울 한강 잠실대교 인근에서 9일 발견된 대남 풍선(왼쪽 사진), 10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의 이동식 확성기로 추정되는 트럭. 연합뉴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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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오물풍선이 용산 안보실 지역까지 떨어졌다. 오물풍선과 대북 전단을 통한 남북 간 이례적인 공중전은 점차 2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예고했는데도 북한이 추가로 오물풍선 투하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을 시도하자 우리 군은 6년 만에 대북 방송을 재개하였다. 당국은 북한의 '하이브리드' 도발을 좌시할 수 없다며 "추가 방송 여부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했다. 김여정은 대남 확성기 방송 등 새로운 공격을 예고하였다. 남북은 비례성 원칙하에서 다음 단계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기이한 도발로 하늘에서 공방을 전개하는 동안 남측 지상에서는 북한이 노렸던 묘한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한 야당 의원은 '천공의 통일 시나리오'까지 거론하며 정부 대응을 조롱하였다. 야당 대변인은 "정부의 확성기 설치와 방송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오히려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가 북한의 도발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들어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여당은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힘을 실었다. 일각에서는 풍선을 격추하지 않아 위험을 초래했다며 오히려 군의 신중한 대응을 질타했다. 경기도지사는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고려하여 탈북자 단체를 단속하겠다고 한다. 북한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남남갈등을 노린 회색지대(그레이존) 도발의 효과가 서서히 정치권에 먹히고 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이해할 수 있다. 최전방 지역과 서해 5도 주민들의 긴장감은 불가피하다.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싫어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한반도 남단에까지 오물풍선이 투하되는 비상상황이다. 풍선에 화생방 물자가 실려 있다면 피해는 상상조차 힘들다. 북한은 다양한 풍선 실험을 통하여 총 한 방 안 쏘고 남한을 일시에 혼란에 처하게 하는 하마스식 기습공격 훈련을 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한이 보유한 독특한 대북 심리전 무기다. 과거 비무장지대 북한군은 확성기 방송이 발표하는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고 빨래를 했다. 효과가 검증된 강력한 비대칭 전력 중의 하나인 확성기 방송을 통해서 오물풍선 투하를 억지하는 조치는 불가피하다.

오물풍선이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서 비롯되었다는 논리는 절반만 진실이다. 북한이 전단 살포를 심각하게 여겨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불리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문재인 정부에 요청하여 시행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오물풍선 투하는 올해 계획된 도발 시나리오의 일환이다. 대북 전단이 없었다면 다른 유형의 도발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총선 전까지 야당을 배려했는지 잠잠하던 북한은 연초 김정은의 두 국가론에 따른 남한 적대국 선언으로 대남 도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11월 초 미국 대선까지 다양한 하이브리드 도발로 수위를 높여갈 예정이다. 북한은 확성기 방송에 대해서는 비무장지대 초소 등에서 총격 등으로 긴장을 끌어올릴 것이다. 일부 무장병력은 비무장지대에 진입하기도 했다. 2단계 도발로 드론에 의한 수도권 교란도 예상된다. 24년 만에 푸틴의 평양 방문이 임박한 가운데 러시아 뒷배를 믿고 과감한 도발도 불사할 것이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로 북한은 족쇄가 풀린 상태다.

정치권과 민관의 대응은 차분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행동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과정에서 긴장은 불가피하다. 핵심은 북한의 도발 의도를 예상하고 효과적으로 억지하고 대응하는 것이다. 남남갈등이 심화되면 북한은 수천 개의 오물풍선 투하로 대남 공포감보다 더 큰 심리전 효과를 거둘 것이다. 북한은 당초 의도한 절반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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