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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135조 아프리카 '큰손' UAE …"두바이는 뉴욕" 말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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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근 아프리카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일러스트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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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부국(富國) 아랍에미리트(UAE)가 아프리카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제적으론 중국의 투자가 주춤하고, 정치·군사적으론 미국·프랑스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UAE가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UAE는 현재 아프리카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나라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자회사인 투자분석업체 에프디아이마켓(fDi Markets)에 따르면 UAE가 2022~2023년 아프리카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971억 달러(약 135조원)다. 같은 기간 중국 규모보다 3배 많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도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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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UAE 자금, 아프리카 생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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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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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UAE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국부펀드 아부다비개발지주회사(ADQ)는 이집트 북부 ‘라스 엘-헤크마’ 지역 개발에 35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며 재정난·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이집트 정부에 숨을 틔워줬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부다비는 이외에도 2019년부터 잠비아, 짐바브웨, 콩고민주공화국 등과 십여 개의 투자 조약을 체결했다”며 “UAE 자금이 아프리카에 생명선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UAE 2대 토후국 두바이는 아프리카의 무역 교두보를 자청한다. 두바이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두바이에 등록된 아프리카 기업 수는 지난 10년 동안 급증해 2022년 2만6420개를 기록했다. “두바이는 이제 아프리카인들에게 뉴욕이다”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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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수단 옴두르만에서 수단 정부군 군인들이 모여 있다. 수단에선 지난해 4월부터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과의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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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아프리카 관계는 ‘돈’을 넘어 정치·군사 영역까지 확대하는 추세다. FT는 “UAE는 ‘돈의 장벽’을 활용해 아프리카 개별 국가의 경제적 운명뿐만 아니라 일부 아프리카 지도자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데까지 도움을 주는 위치에 섰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에티오피아 내전 당시 UAE는 에티오피아 정부군에 군용 드론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정부 군사 조직인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의 전투기들이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위협한 직후 나온 행동이다. 지난해 4월 수단에서 발생한 정부군과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과의 내전에선 RSF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2020년엔 리비아 정부를 공격하는 동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측에 무기를 공급하며 논란이 됐다.



‘부채의 덫’ 비판에 돈줄 죈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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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시진핑(가운데) 중국 국가주석이 아프리카 국가 정상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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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가 아프리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기존의 패권 국가들이 주춤하며 ‘힘의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프라 투자 등에서 아프리카에 막대한 공을 들여온 중국은 최근 돈줄을 죄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과정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부채의 덫(Debt Trap)’ 을 씌웠다는 비판을 의식한 중국은 지난 몇 년간 투자 규모를 크게 줄였다.

이런 가운데 꾸준하게 아프리카에 돈을 댄 UAE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켄 오팔로 조지타운대 교수는 FT에 “UAE는 지난 10년간 (아프리카) 투자 상위 4위권을 유지해 왔다”며 “아프리카에서 중국과 맞대결 벌일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블룸버그도 “중국의 인프라 자금이 줄어들고 서구의 참여가 흔들리는 와중에 UAE의 외교적 야망과 함께 현금이 아프리카에 흘러 들어왔다” 며 “UAE는 영향력이 컸던 북아프리카를 넘어 아프리카의 뿔(북동부 아프리카) 등 대륙 구석구석으로 세력을 확장했다”고 전했다.



미국·프랑스, 반서방 정서에 병력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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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니제르 아가데즈에서 시민들이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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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군사적 영향력이 컸던 미국과 프랑스도 병력을 빼고 있다. 쿠데타 등으로 현지 정권이 바뀌며 반서방 정서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니제르에 주둔 중인 병력 1000명을 철수하기로 한 데 이어 니제르와 국경을 맞댄 차드에서도 특수부대원 100여 명을 빼기로 했다. 니제르와 차드 군사정권이 미국의 군사지원을 거부해서다. 인접국인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도 2021년과 2022년 각각 미국과의 군사 협정을 파기했다. 프랑스도 자국 식민지였던 니제르에서 지난해 1500명의 병력을 철수시켰고 차드에서도 반프랑스 여론으로 주둔이 어려운 상황이다. 알바드르 알샤테리 아부다비 국방대 교수는 “UAE의 부상은 아프리카에서 워싱턴의 영향력 감소와 관련이 있다”며 “미국이 안보 공약을 철회하고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는 그 공백을 UAE로 메운 셈”이라고 FT에 설명했다.



재생에너지·광물·식량 장악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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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항에 위치한 컨테이너 시설에 DP 월드의 로고가 붙어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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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는 왜 아프리카에 공을 들일까. 배경엔 결국 자국 이익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UAE가 아프리카에 투자를 약속한 분야는 재생 에너지·항만·광업·부동산·통신·농업·제조업 등이다. 비영리단체 국제위기그룹의 무리티 무티가 국장은 “UAE가 아프리카 주요 분쟁 등에 참여하는 명분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겠다는 것이었지만, 본질은 재생에너지·식량안보· 광물 분야를 장악해 UAE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UAE 재생에너지 업체 마스다르는 남아프리카에 5개의 풍력 발전소, 세네갈에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설, 모리타니에 태양열 발전 시설 등을 건설 중이다. 마스다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발전 용량을 10GW 늘리기 위해 1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식량확보를 위해 투자회사 두바이 인베스트먼트와 E20 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7월 수단과 짐바브웨, 앙골라 등에 축구장 약 5500개를 합친 면적인 37.5㎢의 땅에 쌀과 아보카도 농장을 짓기로 계약을 맺었다.

광물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UAE 국가안보보좌관 셰이크 타눈빈 자예드 알나흐얀이 이끄는 인터네셔널 홀딩스 컴퍼니는 잠비아 구리광산 대주주 지분을 11억달러(1조5300억원)에 인수했다. 앙골라, 케냐, 탄자니아 지역 광산 투자도 검토 중이다.



아프리카산 금 40% UAE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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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아프리카 우간다 마웨로의 한 금광에서 현지 주민들이 금 채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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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는 매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아프리카산 금을 밀수입한다는 의심도 받는다. 스위스 구호·환경단체인 스위스에이드는 지난 2022년 아프리카에서 지역 전체 생산량의 40%인 약 310억 달러 상당의 금 435t이 신고되지 않은 채 밀수출됐고, 이 중 93%가 UAE로 흘러 들어갔다고 추정했다. UAE의 금 거래업체 ‘프리메라’는 지난해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로부터 콩고 내 모든 소규모 ‘장인’ 금 공급에 대한 25년 독점권을 사들였다.

물류도 장악 중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최대 물류기업으로 꼽히는 두바이 물류회사 DP 월드는 아프리카 내 12개국에 항만 시설을 운영 중이다. FT는 “남부 모잠비크부터 서부 앙골라, 북부의 알제리까지 사실상 아프리카 대륙을 DP 월드 항구가 둘러싸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정치권·미국은 UAE 지지



이러한 비판에도 UAE는 아프리카 정치권에 환영을 받고 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FT에 “UAE는 케냐와 다른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좋은 파트너”라고 말했다. 여기엔 UAE가 아프리카 ‘상위 1%’의 금고 역할을 해주고 있는 측면이 크다. FT는 “아프리카의 유명 정치인이나 상류층 부자들은 두바이의 부동산을 산 뒤 여기서 세계적 수준의 생활 방식을 즐기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암묵적 지지도 있다. 피터 팜 전 사헬 주재 미국 특사는 “UAE의 야망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중국(의 아프리카 장악)을 희석시킨다”고 말했다. 전 바이든 행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UAE가 아프리카에서 하는 모든 일을 인정하진 않지만 UAE는 중요한 동맹”이라고 평가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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