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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장기재정전망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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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얼마 전 감사원은, 2020년 발표된 ‘2020~2060 장기재정전망’에서 홍남기 전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비율 전망치를 축소·왜곡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애초 실무팀은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153.0%(당초 검토안) 또는 129.6%(신규 검토안)로 내부 보고하였으나, 홍 전 부총리가 국가채무 급증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서 비율을 낮추도록 지시했고 그 결과 81.1%로 줄여서 발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홍 전 부총리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며, “재정여건, 예산 편성 프로세스, 국가채무 수준, 국제적 대외관계 등을 모두 감안해 최선의 판단을 하려 했다”고 반박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느냐를 가리기에 앞서 대체 장기재정전망이 뭔지부터 알아보자. 국가재정법은 5년마다 향후 40년 이상의 기간에 대한 재정전망, 그러니까 재정지출 및 국가채무 규모 등을 추계해서 발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기재정전망을 의무화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웬만한 국가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다. 이유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고령화로 인해 대다수 국가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따져보고 대비책을 세우는 게 목적이다. 이와 관련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장기재정전망은 수십년 후의 정부 재정이나 채무 규모를 ‘예측하는 것’(맞추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이는 현재의 제도와 경제여건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향후 재정지출과 채무 규모가 어찌 될지 추정하는 것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장기재정전망 결과 현재 1000조원 이상 쌓여 있는 기금이 2055년경에 모두 소진되며, 그 이후에는 보험료율이 30% 정도 되어야 연금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2055년까지 그대로 유지할 때 그리된다는 얘기다. 물론 진짜로 2055년까지 9%를 고수하다가 2056년이 되어서 갑자기 30%로 올릴 리는 만무하다. 최근 왕성한 연금개혁 논의도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미리부터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게 핵심이다. 이처럼 장기재정전망은 향후의 재정지출 규모를 추정한 후, 이를 감당하려면 재정수입을 언제부터 얼마나 확충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가상 시나리오로 미래 대비

미래 재정지출 규모를 전망할 때는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을 구분한다. 의무지출은 법규에 따라 조건만 충족하면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지출이다. 재량지출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지출이다. 재정전망의 기본 가정이 ‘현 제도 유지’이므로, 재량지출은 통상 현재 수준이 미래에도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한다. 현재 재량지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라면 미래에도 12%일 것으로 가정한다. 따라서 미래 재정지출 규모 변화는 전적으로 의무지출 규모에 달려 있다. 의무지출 중 규모가 큰 사업들, 국민연금, 기초연금, 의료급여 등은 고령화에 따라 지출이 늘어난다. 지출은 느는데 수입은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니 국가채무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는 재정지출과 수입이 수지 균형 상태라고 하자. 그런데 향후 40년간 고령 관련 의무지출이 현행보다 평균 2.5%포인트 증가한다고 하자. 그러면 40년 뒤의 국가채무비율은 현행의 51%보다 100(=2.5×40)%가 높아져서 151%가 된다. 우리의 재정력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럼 어쩌나. 현 제도 유지 시 40년 뒤 국가채무비율은 151%가 된다고 발표하는 것으로 그치면 장기재정전망의 목적을 달성한 게 전혀 아니다. 이 규모를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줄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계획까지 제시해야 목적을 달성한 게 된다. 예를 들어 현재보다 조세와 보험료 수입을 평균 2%포인트만 높이자. 그럼 40년 뒤의 국가채무비율은 현행보다 20(=0.5×40)%만 높아진 71%가 된다. 이 정도라면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겠다. 이처럼 가상의 시나리오를 추정하고, 그에 따라 지속 가능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게 장기재정전망의 목적이다. 다른 나라는 그렇게 한다. 가령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 NABO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영국은 2020년 GDP 대비 88.5%인 공공부문 순채무비율이 2069년에는 418.4%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연히 실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 전에 필요한 재정안정 조치를 할 것이다. 그래서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는 2069년 목표 채무비율을 설정하고, 이의 달성에 요구되는 매년의 적자 감소 폭을 제시했다.

‘2020~2060 전망’ 취지 무색

장기재정전망의 취지가 이렇다면, 우리의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150% 이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겠다. 목표 채무비율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려면 재정수입을 얼마나 더 확충해야 하며, 그러려면 조세와 사회보험료율은 얼마나 높여야 하는지, 그리고 지출구조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2020년에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적자 줄이는 대안 마련 대신 아예 전망치 자체를 축소한 것이다. 방법은 가정의 변경이었다. 재량지출만 GDP 대비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는 대신, 재량지출과 의무지출을 더한 총지출이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명분은 그게 좀 더 현실적이라는 이유였다. 과연 실제 국가채무비율이 150%까지 치솟을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80%라는 게 현실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장기재정전망의 목적은 현실적인 예측에 있지 않다. 미래의 재정위험 정도를 파악하고, 그리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는 데 있다. 2020년의 장기재정전망은 왜곡 여부를 떠나서, 국가재정법이 장기재정전망을 의무화한 취지를 무색하게 한 것이다.

무지몽매(?)한 언론은 이러한 장기재정전망의 깊은 뜻을 모른다. 그래서 원칙대로 발표하면, 정말 40년 후 나랏빚이 150%가 넘는 것으로 곡해할 것이다. 그러니 원칙에 따른 전망치 대신 현실성을 가미한 조정치를 발표하는 것이 언론의 이해에 부합하는 게 된다. 아마도 기재부는 이렇게 여긴 듯하다. 글쎄, 그럴 거라면 장기재정전망은 왜 하나. 내년에는 세 번째 전망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박한 가정이 도입될까.

경향신문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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