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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중증환자 눈물의 호소에도…서울대병원 "진료예약 한달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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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갈등 ◆

매일경제

12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안으로 의료진과 내원객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날 연세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7일부터 연세의료원 산하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의 무기한 휴진을 결정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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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의 집단 휴진 결정으로 환자들의 고통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세브란스병원도 이달 말부터 집단 휴진에 돌입하기로 결정했다. 수술이 연기된 환자와 가족들은 "무기한 휴진으로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휴진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의사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12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한국폐암환우회 등 6개 단체가 속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오는 17일 무기한 휴진에 돌입하는 서울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휴진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날 기자회견 도중 곳곳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들은 의사에 대한 고소·고발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쓴 채 거리로 나선 중증질환자들은 지속된 의료 공백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식도암 4기 환자인 김성주 연합회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는 단순히 돈벌이하는 일반 직업인이 아니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립대병원 교수"라며 "그런데도 국민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대의를 내팽개치는 어처구니없는 집단 휴진을 강행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중증질환자들이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에서 연명해가던 희망의 끈을 놓아야 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며 "전면 휴진으로 중증질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28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인 김태현 한국루게릭연맹회 회장은 "법과 원칙에 입각해 의사집단의 불법 행동을 엄벌해달라"며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트리고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의사집단을 더는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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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에서 이미 잡혀 있던 진료와 수술 일정 연기를 환자들에게 통보하면서 환자들의 공포는 극대화되고 있다. 오승원 서울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 홍보담당 교수는 "공식적으로 정해진 방침은 없지만 환자들의 상황을 고려해 대략 한 달 뒤로 진료 예약을 조정하고 있다"며 "그 안에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음달에 또다시 일정을 미루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이 소속 교수들의 집단 휴진을 불허한다고 못 박았지만 진료 스케줄을 개별적으로 조정하는 건 막을 수 없다는 게 비대위 측 입장이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김 병원장의 방침으로 병원 전산을 통해 환자들에게 예약 변경을 안내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이에 고충을 토로하는 교수가 많아 비대위 차원에서 전날부터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스케줄 조정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날 연세대 의대 교수 비대위는 27일부터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등 3곳에서 모든 과의 외래진료와 비응급수술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응급실, 중환자실, 투석실, 분만실 등 응급·중증 환자의 진료는 유지한다. 앞서 비대위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교수 총 735명을 대상으로 내부 의견을 수렴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의사 총파업이 예고된 18일 이후에도 현 사태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무기한 휴진하겠다는 문항에 531명(72.2%)이 찬성했다.

연세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정부는 줄곧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결정하는 건 정부 권한이라고 주장해 왔는데 그 말은 곧 정책 추진에 따르는 문제 역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왜 교수들이 전공의와 학생들의 복귀를 설득해야 하는지, 이들의 미복귀가 왜 교수들 탓인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라도 정부는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뿌린 덫을 가시적으로 제거하고 이들을 위한 과감한 선제 조치를 취해라"고 덧붙였다.

의대 교수들의 강경한 움직임이 확산하면서 정부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다만 현재로선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해 '원칙대로 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 관계자는 "정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긴 하지만 전향적인 입장 변화 등은 아직 없다"며 "17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승적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의 연이은 파업 선언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이날 대규모 집회를 열고 명분 없는 집단행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00일 넘게 지속된 의료 공백으로 환자들이 치료 적기를 놓쳐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또 명분 없는 집단 휴진을 한다고 한다"며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고 병원의 경영난 심화에 따른 피해는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진료지원(PA) 간호사가 2만명에 육박하는데 의사들만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정부는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덧붙였다.

[심희진 기자 / 진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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