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기능 쏟아냈지만... 주가는 2% 하락
챗GPT 언급 최소화, 올트먼도 관객석에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애플 본사에서 열린 애플의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가 애플 로고 앞에 서 있다. 쿠퍼티노=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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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 지각생'으로 불리는 애플이 10일(현지시간) 자체 AI 시스템을 공개하고 AI 대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러나 놀라운 반전은 없었다. 애플이 선보인 AI 신기능은 이미 시장에 나와있는 게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연말에나 소비자들에게 제공된다고 밝혔다.
'애플만의 고유한 무언가'를 기대했던 주식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실리콘밸리에선 "정작 무대 아래 있던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애플 발표의 최대 수혜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애플은 이날 미국 실리콘밸리 본사에서 세계개발자회의(WWDC)를 열고 애플표 AI인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를 공개했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2022년 말 불어닥친 챗GPT발 AI 열풍 이후 애플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생성형 AI 시스템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경쟁사보다 AI 공개가 1년 이상 뒤처지며 경쟁력 우려를 키웠던 애플은 이날이 "애플 혁신의 새 장"이 될 것이라 자신했다.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인텔리전스는 애플만이 구현할 수 있는 AI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애플 WWDC에서 크레이그 페데리히 애플 수석부사장이 음성 비서 시리와 챗GPT의 통합을 발표하고 있다. 애플 영상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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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만나 진짜 '비서'다워진 시리
이날 발표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음성 비서 '시리'의 진화다. 2011년 처음 공개된 시리는 생성형 AI와 만나 전보다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해졌고, 마치 사람처럼 이용자 특성과 상황을 이해하며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비로소 '비서'다워지는 것이다.
친구가 문자 메시지로 새 이메일 주소를 보내면 앞으로는 시리에 "이 주소를 친구 연락처에 추가해 줘"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시리가 여러 애플리케이션(앱)을 넘나들며 명령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제이미가 추천한 노래 좀 재생해 줘"라고 주문할 경우, 제이미가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문자로 했는지 이메일로 했는지 말해주지 않아도 시리가 알아서 찾아 재생해 준다. 같은 원리로 "엄마가 탄 비행기가 언제 도착하지?"라고 물으면 시리가 스스로 항공편 번호를 찾아 실시간 운항 정보와 대조해 도착 시간을 알려주고, 여기에 다시 "엄마를 마중 나가려면 몇 시에 출발해야 할까?"라고 질문하면 지도 앱을 켜 소요 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애플이 10일 공개한 애플 인텔리전스는 최우선 알림을 알아서 파악해 알림 최상단에 표시해 준다. 애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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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이모티콘 생성, 알림 선별·요약도
시리로 오픈AI의 챗GPT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크레이그 페데리히 애플 수석부사장은 "우리는 이용자들이 다른 도구로 이동하지 않고도 외부 AI 모델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그래서 우리는 '최고의 것'부터 통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챗GPT를 품은 시리는 기기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명령의 경우 챗GPT로 전달해 처리한다. 명령에 사진을 포함시킬 수도 있다. 가령 뒤뜰을 아이폰으로 촬영한 뒤 시리에 대고 "여기엔 어떤 식물을 기르는 게 어울리겠어?"라고 물어보면 시리는 챗GPT와 이 사진을 공유하고 답변을 받은 뒤 이용자에게 전달한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시리 외에도 애플 기기 속 대부분 기능의 편의성을 향상시킨다. 대표적인 게 쌓인 메일이나 알람 가운데 저녁 식사 초대, 오늘 이용할 탑승권처럼 시급하고 중요한 것을 알아서 추려내 화면 최상단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용자가 요청하면 내용을 요약해 보여줄 수도 있고, 적절한 답장 내용을 제안해 주기도 한다. 원하는 이모티콘을 설명하면 나만의 이모티콘을 만들어 주는 기능(젠모지)도 추가된다. 사진·동영상 검색도 더 편리해진다. '스케이트를 타는 마야'처럼 자연어로 검색할 수 있게 된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올해 말부터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다만 이용 가능 기기는 지난해 이후 출시된 고급형 모델로 한정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10일 미국 실리콘밸리 애플 본사에서 열린 애플 세계개발자회의(WWDC)에 참석해 애플의 발표 내용을 지켜보고 있다. 쿠퍼티노=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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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없었나... 오픈AI에 손 내민 애플
이날 애플의 발표는 기술 혁신보다는 사용성 개선에 초점이 맞춰졌다. 참신함은 떨어져도 편리하고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는 건 애플의 오랜 전략이다.
그러나 이날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91% 떨어진 채 장을 마쳤다. "월가의 높은 기대를 빗나갔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실제로 애플이 시연해 보인 메시지 요약, 답장 제안, 자연어 사진 검색 등은 삼성전자, MS, 구글 등 경쟁사들이 이미 선보이고 출시까지 한 기능이다.
챗GPT를 아이폰 등 애플 기기에 흡수하기로 한 결정 역시 실망감을 키운 것으로 해석된다. 가급적 자사 제품끼리만 연동시키는 폐쇄적 생태계를 경쟁력으로 삼아 온 애플이 다른 회사의 힘을 빌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테크업계에서는 애플이 자체 개발한 AI 성능이 아직 부족함을 자인한 셈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평가를 인식한 듯, 애플은 이날 1시간 45분간 이어진 행사에서 챗GPT 언급에는 단 2분만을 할애했다. 올트먼은 이날 행사에 직접 참석했으나, 애플은 그를 무대에 불려 올리지 않았다. "오픈AI와의 제휴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날 행사의 승자는 오픈AI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 등과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오픈AI는 애플과 손을 잡음으로서 단번에 전 세계 10억 명에 이르는 아이폰 이용자들을 챗GPT의 잠재 이용자로 확보하게 됐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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