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약 40년간 안정된 물가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팬데믹 충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투자자 등 경제 주체들은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더 이어질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자산 가격과 연관성이 크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긴축적 통화 정책을 쓰게 되고, 금리가 올라가면 자산 가격은 떨어지게 된다.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에 주목하는 이유다.
현재 전 세계 투자자의 주요 관심 중 하나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할 것인가’이다. ‘어느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내릴 것인가’도 중요한 관심이지만, 일단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우선이다. 국내 투자자의 경우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뿐만 아니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도 중요하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과 한국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이 가능하나 수요와 공급의 인플레이션 기여도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지난해 공급망 개선으로 공급 측 물가 압력이 떨어지면서 인플레이션 둔화가 발생했지만, 수요 측 물가 압력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올해 1분기(1∼3월)에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견조한 수요 측 압력에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소폭 더해졌다.
중동을 포함한 전 세계 지정학적 위험이 추가로 확대하는 국면이고, 다가오는 겨울에는 라니냐 발생 등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에 대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는 향후 공급 측 물가 압력을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 강세는 미 연준이 성급하게 기준금리 인하를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미국과 반대로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 물가 압력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한국의 개인소비지출(PCE)에서 물가의 수요와 공급 기여도를 추정해 보면 지난해에 걸쳐 수요 기여도는 하락하는 반면 공급 기여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 상황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환율의 움직임을 더욱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환율의 변동은 생산자 물가를 통해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 안정이 급격하게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 한은이 미 연준보다 빨리 금리를 내릴 경우 원화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환율이 상승할 경우 수입 물가는 올라가고,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를 다시 자극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미 연준의 인하 시점과 궤를 같이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국이 9월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면 한은이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유연성이 생길 수 있다. 해외 달러 자금의 유입으로 원화 절상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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