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부터 9만원까지 들쭉날쭉
작년 펫보험 계약건수 52% 늘어
실손보험처럼 업계 ‘애물단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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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최근 생후 5개월 된 반려견을 입양하고 예방접종을 위해 인근 동물병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실제 접종 과정은 5분 정도에 불과했는데 10만 원이 넘는 비용이 청구된 탓이다. 영수증을 보니 진료 과정에서 1분도 걸리지 않았던 피부 검사와 염증 약 사용 등 원장의 모든 손길에 개별 단가가 책정돼 있었다. 김 씨는 “나중에 다른 병원을 찾아갔더니 같은 접종 비용이 절반 수준이었다”며 “처음에 펫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본 것이 과한 비용 청구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펫보험 시장에서 과잉 진료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병원별 진료비가 ‘깜깜이’로 운영되는 데다 보험료 할인·할증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아 과잉 진료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탓이다. 이대로라면 보험업계의 손실이 가중돼 펫보험이 실손보험처럼 업계의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반려견 진찰료 최대 25배 차이
3일 농림축산식품부의 ‘동물병원 진료비용 현황 조사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동물병원의 반려견 초진 진찰료는 최저 3000원에서 최고 7만5000원으로 최대 25배의 차이를 보였다. 상담료는 최저 2000원에서 최대 9만 원으로 병원별 비용 격차가 45배에 달했고, 입원비(소형 반려견) 역시 전국적으로 최대 30배까지 차이가 났다.
과잉 진료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부 동물병원 원장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과잉진료 방법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알레르기 검사로 수십만 원을 책정하거나 불필요한 엑스선 검사를 추가하며 진료비용을 과다 청구하는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반려동물이 단순 감기로 방문했다고 해도 보호자에게 살짝 겁을 주면서 바이러스 검사나 엑스선 촬영을 추가하면 몇 분 만에 수십만 원도 벌 수 있다”고 했다.
보호자가 과잉 진료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현재 반려동물의 질병명·진료코드 등 진료 정보는 표준화되지 않았다. 진료 항목이 모두 비급여인 점도 적정한 진료비와 입원비 책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문제 해결을 위해 21대 국회에서 ‘반려동물 진료 표준화 분류체계 마련’과 관련된 수의사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 ‘양적 확대’만 꾀하다가 ‘애물단지’ 될 수도
보험업계에서는 현 상태가 이어진다면 펫보험이 미래 먹거리는커녕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시중에 출시된 펫보험 상품은 진료비용에 따른 보장 비율이 50%에서 100%에 달한다. 보험금 수령에 따른 보험료 할인·할증 제도도 없다.
한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자기부담금이 적은 상품을 계약한 고객이라면 반려동물의 건강을 철저히 살펴보겠다는 의료 행위를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과잉 진료 시) 동물병원은 돈을 벌고 고객도 별 피해가 없는데 보험사만 손해가 누적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펫보험 산업의 양적 성장 이전에 관련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보험업계의 펫보험 계약 건수는 10만9088건으로 전년 대비 51.7% 급증했다. 김경선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려동물 진료 체계를 표준화해서 의료 서비스를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이 확립돼야 한다”며 “보험업계에서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펫보험의 보장 한도와 자기 부담률 구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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