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내에 지난 30일 대자보 붙어…‘서울대 N번방’ 사건 규탄
“여성을 동등한 학우로 여겼다면 범죄 저지르지 않았을 것”
서울대 졸업생 등이 대학 동문 등 여성 수십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을 규탄하면서,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동아리 대자보가 서울대 교내에 지난 30일 붙었다. 이 동아리는 급진 페미니즘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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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졸업생 등이 대학 동문 등 여성 수십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이른바 ‘서울대 N번방’ 사건을 규탄하면서, 피해자와 연대하겠다는 동아리 대자보가 서울대 교내에 붙었다.
31일 서울대에 따르면 전날 이 학교의 한 동아리가 교내에 붙인 ‘왜 아직도 여성은 동료가, 시민이, 인간이 아닌가’라는 제목 대자보는 “같은 학교에 입학한 우리는 서로의 배움을 돕는 존재”라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로 어울리고 동등해지는 공간이 바로 학교”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번 사건으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존재일 거라는 믿음이 깨졌다고 지적한 대자보는 “가해자가 피해자인 여성을 동등한 학우이자 동료 시민으로 여겼다면 이들을 모욕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학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검·경의 수사는 안일하고 허술했다”며 “누구보다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와 수사기관은 ‘용의자 특정이 불가하다’며 피해자를 방관했다”고 날을 세웠다.
피해자의 제출 증거가 부족하지도 않았는데 수사 기관이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이들의 주장은 서울대 남학생 8명이 단체 대화방에서 동기 여학생들 불법 촬영물을 돌려보며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대자보가 2016년에 붙었었는데도, 사건 처리가 미온적으로 마무리됐다던 일부 비판과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부족한 인식과 미온 대처 등이 이번 사건의 토대가 됐다고 본 것으로도 읽힌다.
대자보는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진 성범죄라는 유사성만으로 ‘N번방’이라 부르는 것은 실제 ‘N번방 사건’과 이번 사건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한다”며 “각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사건을 두고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서울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얼마 전 여초 커뮤니티에서 일어난 성희롱 사건을 덮기 위한 언론의 움직임이라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쏘아붙였다. 피해자와의 연대를 다짐하는 것으로 대자보를 마무리한 이 동아리는 급진 페미니즘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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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1부(장혜영 부장검사)는 20대 박모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상습허위영상물편집·반포 등) 혐의 등으로 지난 24일 구속기소했다. 박씨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허위 영상물 400여개를 제작하고 1700여개를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박씨는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서울대 졸업생 박모(40·구속기소)씨에게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연락한 뒤 함께 여성 수십명을 대상으로 음란물을 만들어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기소된 박씨는 서울대 졸업생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N번방’ 사건은 40대 박씨와 강모(31·구속)씨 등이 텔레그램으로 대학 동문 등 여성 수십 명의 사진을 이용해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을 말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61명의 여성이며, 이중 서울대 동문은 12명이다. 40대 박씨를 지난 1일 구속 기소한 검찰의 강씨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검찰은 이들이 만든 불법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불구속 송치된 피의자 2명도 수사 중이다. 또 다른 피의자인 서울대 졸업생 한모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은 뒤 서울고등법원의 재정신청 인용으로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 중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이 알려진 후, 디지털 성범죄 현황과 함께 위장수사 확대 등이 담긴 대책 검토 방향을 국회에 보고했다. 기존에 미성년자 범죄에만 한정됐던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 범위를 성인 대상 범죄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력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경찰은 판단했다.
디지털 성범죄 위장수사는 박사방·N번방 등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돼 2021년 9월 개정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동청소년성보호법) 시행에 따라 정식 도입됐다. 현재는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선 경찰이 위장수사를 할 수 있지만, 성인 성 착취물 등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없어 위장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40대 박씨 신상 특정과 검거에도 2년여간 공범을 자처하며 텔레그램으로 접촉을 시도한 ‘추적단 불꽃’ 소속 민간 활동가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성인이 피해자라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위장수사를 하지 못하면서 민간에 의존했다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비율이나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과 공포감이 연령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위장수사 확대 필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근거다. 위장수사에는 남용 시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고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라붙는 만큼,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홍림 서울대 총장은 지난 23일 서울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에 유감을 표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유 총장은 “우리가 많은 사회적 어려움과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며 “이번에 불거진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서도 절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고, 그에 최고 교육기관인 서울대는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더 선구적인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하는 책임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계속해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 피해자 보호를 위해 대응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논의를 시작했다”며 “인성, 사회적 책임감, 공공성, 시민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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