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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지평선] 당론과 소신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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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하루 앞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직원들이 전자투표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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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앞둔 국민의힘이 이탈표 단속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 지도부는 28일 국회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할 계획이지만 무기명 비밀투표에서 의원 개인의 소신투표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국민의힘에서 김웅 안철수 유의동 최재형 의원 등이 특검법 찬성 의사를 밝혔다. 여당에선 당론과 다른 견해를 밝힌 이들에게 "당을 떠나라", "소신이 아닌 몽니" 등의 험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 국회의원은 각 개인 자체가 독립적 헌법기관이다. 헌법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제46조 2항)고 규정하고 있고, 국회법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제114조의2)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법 규정은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이 주도해 만들었다. 당론으로 인해 국회의원이 거수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였다.

□ 그러나 민주당에서도 2019년 12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표결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금태섭 의원을 '당론 위반'으로 징계했다. 이에 "헌법·국회법 위에 당론이 있느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의 경우, 당론이 아니라 자율투표에 맡겼음에도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친명계 지도부의 '비명횡사' 공천이라는 보복이 현실화됐다.

□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 대표 체포안 표결 당시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깨고 자신의 명패와 부결 투표용지를 찍은 인증샷을 공개했다. 지도부와 강성 당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국회의원의 위신과 당의 품격을 스스로 실추시킨 것이다. 이처럼 당론이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가르는 잣대나 당 주류의 기득권 강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정치는 물론 의원들의 소신은 설 자리를 잃는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을 앞둔 여당 내 표 단속 움직임도 예외일 수 없다.

김회경 논설위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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