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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시론]데이터는 네이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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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IT 후진국이라는 위기감이 라인야후 사태를 촉발했다. 일본은 데이터 주권을 갖지 못했다. 영토 안에 데이터센터를 놓고 플랫폼에서 생산된 정보를 스스로 관리할 능력을 갖춘 나라는 전 세계에 미국과 중국,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4개국뿐이다. 그런데 일본이 종속된 플랫폼 ‘라인’이 하필 한국 기업 서비스라니, 억지떼를 쓰는 건 사활이 걸린 문제라는 뜻이다.

네이버는 라인을 통해 일본인의 금융·쇼핑 생활, 콘텐츠 이용 행태 심지어 행정 처리 정보까지 관리한다. 일본인이 무엇을 사고 누구와 거래하는지 모든 데이터가 ‘한국 수중에 놓였으니 불안하지 않겠느냐’라고 걱정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자. ‘여기는 중국이 아니야.’

상식선에서 볼 때 한국 정부와 네이버가 손잡고 데이터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을까.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거나 행정·금융 시스템을 마비시켜 우리가 얻을 이익이 과연 무엇일까. 일본이 한국의 주적이라면 확실한 무기가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벌어질 일은 아니겠다. 그래도 ‘만에 하나’ 국제 관계의 불안정성이 두려워 협상을 요구한다면 조급한 쪽은 일본이다. 데이터는 네이버에 있다.

구도는 이러한데 상황은 반대로 흘러간다. 일본 언론은 이 문제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반면, 흥분한 한국은 ‘라인을 일본에 뺏기게 생겼다’라며 정부와 네이버를 돌아가며 비판한다. 흡사 네이버를 향해 ‘일본 데이터를 포기하지 마. 그것으로 할 일이 많단 말이야’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겠다. 반복하지만 여기는 중국이 아닌데도 말이다.

도대체 총구를 어느 쪽에 향해야 할지 불분명한 이 상황은 네이버의 침묵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정부나 언론이 네이버에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말을 하라’라고 압박함에도 그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 협상에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편끼리 ‘팀 킬’하는 자충수가 되지 않도록 발언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매각하든, 복잡한 지배구조를 해체·분할하든 혹은 중국 기업에 지분을 팔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든, 네이버는 자사와 직원·주주·사용자 권리 보호에 가장 부합하는 조건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일본 정부의 몰상식적 압박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불리한 계약서에 서명할 처지에 놓인다면, 네이버는 너무 늦지 않게 침묵을 깰 것이다.

네이버가 언론 시장에 미친 악영향을 줄곧 비판해왔지만, 데이터 주권을 확보한 몇 안 되는 나라를 만든 그들의 기업가 정신에 찬사를 보내는 일에는 인색할 수 없다. 네이버가 데이터를 손에 쥐고 최대한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어내길 응원한다. 결과적으로 데이터가 일본 기업으로 온전히 이전되고 네이버는 거기서 손을 뗀들, 그것이 우리의 데이터 주권과 디지털 권리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라면, 네이버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종결되면 문제없는 일이다. 사기업과 정부가 혼연일체로 특정 국가를 공격하는 일, 국제 질서나 자유 시장주의에 역행하는 막무가내 주장을 펼치는 일이 한국에서도 벌어져야 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여기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다.

신범수 편집국장 겸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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