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들 무덤 돼가는 K리그
연패에 분노한 일부 수원 팬들은 25일 선수단 버스가 나가는 수원월드컵경기장 주차장 출구를 가로막았다. 이런 ‘버막(버스 막기)’ 시위는 K리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과열 팬 문화다. 팬 앞에 선 염기훈(41) 감독은 그 자리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염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박경훈 단장님을 찾아가 내가 팀을 떠나는 게 맞다고 이야기했다”며 “오랜 시간 수원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웃으면서 떠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
염 감독은 수원 레전드 출신 지도자다. 플레잉코치로 있다가 작년 9월 성적 부진으로 김병수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최하위로 마쳐 2부 강등을 막진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대행 꼬리표를 떼면서 각오를 다졌지만 중도 하차라는 불명예를 피하지 못했다.
올 시즌 K리그에도 ‘감독 잔혹사’는 이어지고 있다. 염 감독은 올 시즌 K리그 개막 후 물러난 다섯 번째 사령탑(1·2부 합산)이다. 202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K리그 1·2부 정식 사령탑(대행 제외)이 시즌 중 교체된 경우는 5→3→6→7회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 올해는 석 달도 지나지 않아 5명이 옷을 벗었다. 보통 시즌 초반에는 하차 사례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초반(3~5월)에 물러난 감독은 지난 4년간 다 합쳐 3명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벌써 5명이다. 지난 3월 K리그2 이기형(50) 성남 감독은 3경기(1무 2패)를 치른 뒤 경질되기도 했다.
이런 ‘감독 잔혹사’는 앞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하위권에 머무는 1부 리그 구단일수록 ‘2부 추락’이란 치명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충격 요법을 써야 할 유혹을 받는데 그중 가장 손쉬운 게 감독 교체이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개막 이후 감독이 바뀐 횟수는 1부 리그 17회, 2부 리그 9회였다. 지난달 단 페트레스쿠(57·루마니아) 전북 감독은 팀이 최하위인 12위, 최원권(43) 대구 감독은 11위로 처져 강등권을 헤매자 자진 사퇴했다. 형식은 자진 사퇴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지난 21일에는 2022년 대전을 2부에서 승격시켰던 이민성(51) 감독도 팀이 꼴찌로 추락하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유럽 축구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23-2024시즌 도중 정식 사령탑이 경질되거나 사임한 횟수가 가장 많은 리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14회). 최하위로 2부 강등이 확정된 살레르니타나는 한 시즌 치르는 동안 사령탑을 세 번 갈아치우기도 했다. 지난해 세리에A 챔피언에서 올 시즌 10위로 추락한 나폴리도 개막 이후 감독이 두 번 바뀌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올 시즌 도중 감독이 교체된 횟수가 3회에 불과했지만, 지난 시즌에는 14회에 달했다. 2023-2024시즌 유럽 5대 리그에선 개막 이후 평균 8.8회 감독이 교체된 바 있다. 다만 시즌 중 감독을 바꾼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듯 이 같은 사령탑 교체는 실질적이기보단 “뭔가 비상 대책을 마련했다”는 상징적 효과를 노린 것이란 지적이 많다. 실제론 시즌이 끝나고 감독을 바꾸는 게 성적 상승 효과 면에서 낫다는 분석이다.
25일 K리그1 14라운드에선 울산이 대전을 2015년 이후 9년 만에 4대1로 물리치며 승점 27로 선두로 올라섰다. 포항과 서울은 2대2, 김천과 전북은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포항(21골)과 김천(19골)은 승점이 26으로 같지만 다득점에서 앞선 포항이 2위, 김천이 3위가 됐다. 광주와 인천은 1대1로 비겼다. 26일엔 강원이 대구를 2대1로 물리치며 4위(승점 22)로 올라섰다. 제주는 수원FC를 1대0으로 꺾었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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