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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너 없으면 안 돼" "거절 당한 것에 화가 나"... 데이트 폭력 전조증상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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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경 대검 임상심리분석관 인터뷰

교제폭력 살인범죄자 특성 집중 연구

"연인이 하루아침에 가해자 되지는 않아"

거부 민감·관계 중독 보이면 위험신호

“연인이 하루아침에 교제살인의 가해자가 되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이른바 ‘의대생 여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교제살인’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고민경 대검찰청 임상심리분석관은 지난 20일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심리분석실에서 이뤄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연인이 교제폭력이나 교제살인 범죄를 일으키기 전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발견된다는 뜻이다. 고 분석관은 이른바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 ‘시흥동 연인 보복살인 사건’ 등 교제살인 사건 가해자들의 심리를 분석해왔으며, 교제폭력·살인 범죄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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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살인사건’의 범인 최모씨(왼쪽부터),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김태현, ‘시흥동 연인 보복살인 사건’의 범인 김모씨.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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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분석관은 교제폭력·살인 범죄자에게서 특정한 심리적 특성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인에게서 이런 심리적 특성이 발견될 때 적절한 치료나 분리조치를 취해 교제살인 범죄를 예방해야 한다는 게 고 분석관의 조언이다. 무엇보다 초동 수사에서부터 범죄자의 위험성을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범죄를 예방하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너 없으면 안돼”는 말 폭력으로 이어져

교제살인 범죄자에게 흔히 관찰되는 심리적 특성은 다섯 가지다. 가장 대표적인 특성은 ①거부 민감성이다. 거부 민감성은 상대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과 과잉반응이다. 고 분석관은 “누구나 거절을 당하면 기분이 나쁘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교제살인 가해자들은 단순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도 ‘나는 너 없으면 안 되는데 네가 다 거부한다’며 파국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사고를 한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고민경 대검찰청 임상심리분석관이 지난 20일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심리분석실에서 이뤄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제폭력 범죄자들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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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들었을 때 극대화된다.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명문대 의대생 최모(25)씨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자 돌변했다.

이들에게선 상대방에 대한 ②관계중독 성향도 나타난다. 싸움이나 헤어짐이 반복되는 불안정한 애정관계를 유지하려는 성향이다. “나는 너와 헤어지면 끝”이라며 이 관계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다. 상대와 잠시라도 연락이 안되면 불안해하기도 한다.

대인관계에 대한 예민성과 분노감, 우울감, 적대감, 신경증이 높은 정신질환인 ③경계선적 성격 장애와 자존감에 손상을 입을 경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④자기애적 취약성도 흔하게 발견된다. 고 분석관은 지난해 5월 발생한 ‘시흥동 연인 보복살인 사건’ 가해자 김모(34)씨와 2021년 벌어진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의 가해자 김태현(28)을 상담한 후 직접 경계선적 성격장애 진단을 내렸다. 고 분석관은 “교제살인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반사회적 성격장애보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김태현은 자신이 거절당했다는 것에 화가 나 피해자를 살해한 후 분노감이 해소되지 않아 일가족을 모두 살해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해자도 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타인의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공격성을 보이며, 반복적인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특성이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해자들은 파트너와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나 상대를 통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다만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없어도 교제폭력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김태현은 연쇄적으로 3명의 피해자를 살해했지만, 반사회적 성격장애 진단을 받지 않았다.

고 분석관은 “대화를 할 때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내 행동 반경을 감시하는 느낌이 교제살인 범죄의 전조증상에 해당할 수 있다”며 “연인 간에는 적정한 심리적 거리가 있어야 하고, 지나친 종속이나 통제, 감정 기복 등을 보일 땐 치료나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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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재발 위험성’도 높아

교제폭력·살인 범죄는 이처럼 가해자들의 특정한 심리적 특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에서 재범 위험성이 높다. 이런 심리적 특성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연인관계였기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소 등 개인정보와 행동 반경을 잘 알고 있어 보복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시흥동 연인 보복살인 사건’ 가해자 김씨는 연인인 피해자 A씨를 폭행했다가 A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하자 경찰 조사를 받은 당일 A씨를 살해했다. 고 분석관은 “출소 후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연인이 바뀐 후에도 범죄를 다시 저지를 수 있다”며 “초동 수사에서 위험성을 판단해 스토킹 범죄처럼 가해자에게 접근금지 명령 등 잠정조치를 내리고, 출소 후에도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제폭력 가해자를 처벌할 때 재범 예방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법원이 데이트폭력(교제폭력)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 유죄 판결을 선고하거나 약식명령을 고지하는 경우 데이트폭력 진단∙상담, 데이트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재범 예방을 위해 필요한 사항 등의 수강명령을 병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데이트폭력처벌법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본인이나 연인이 이 같은 심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범죄가 발생하기 전 적극적인 심리 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다. 고 분석관은 “반사회적 성격장애 외 네 가지 성격 특성은 상담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며 “자신의 기분을 자각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민 기자 yook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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