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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애견인’ 이건희 이어 JY까지…31년째 삼성이 키운 안내견[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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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 동행…횡단보도·계단 일단 '멈춤'

시각장애인 안전 확보 최우선…지하철 달리는 굉음도 익숙

31년째 삼성 대표 CSR…사회화부터 훈련까지 2년간 육성

'애견인' 이건희 싹 틔워 JY까지…"안내견 확대 위해 최선"

[성남=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씩씩하게 걷던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가 보행 신호등도 없는 건널목에 다다르자 스스로 멈춰 섰다. 신비와 함께 걷던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자동차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확인한 후 “가자, 신비야”하고 말하자 신비는 건널목을 건너며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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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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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만난 신비는 태어난 지 약 1년8개월 된 수컷 레브라도 리트리버다. 삼성이 육성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신비는 안내견 시험에 최종 합격해 무상 분양을 앞둔 상태로 훈련하고 있었다. 이날은 기자를 배려해 직선코스 안내 교육 체험에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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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와 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보행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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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상황 안정적 안내…지하철 탑승도 익숙

수인분당선 수내역 일대 도심을 한 바퀴 도는 내내 신비는 의젓하게 훈련을 진행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가 신비를 향해 “강아지다!” 라며 소리쳐도, 기자가 신비 옆구리를 갑자기 가볍게 두드려도 잠깐 돌아보기만 할 뿐 안내를 이어갔다. 산책하는 다른 반려견을 만나면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기도 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아는 듯 훈련에 집중했다. 이명호 훈련사는 그런 신비에게 “신비, 잘했어”라며 간식을 줬다.

이 훈련사는 “안내견 교육에서 중요한 점은 시각장애인을 계속 안정적으로 안내하는 것”이라며 “걸을 때도 일관된 속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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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와 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직선코스 보행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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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와 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물웅덩이를 피해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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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는 지하철 승하차 훈련도 수월하게 진행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기 전, 또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하기 전 매번 신비가 먼저 멈췄다. 이 훈련사가 높낮이 차이를 확인한 후 발걸음을 내딛자 신비는 걷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 안전을 위해 단차가 있는 곳에서는 정지하도록 교육받는다는 게 이 훈련사의 설명이다.

지하철역 내 개표구를 지나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신비는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반대 방향에서 앉아 대기했고, 지하철에 탑승해서도 문 옆 지하철 의자에 가까이 붙어 엎드렸다. 신비는 지하철이 달리며 내는 굉음과 지하철 내에 울리는 안내방송, 승객들의 통화소리와 시선이 익숙한 듯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이 훈련사는 “안내견들은 다양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훈련 받는다”며 “지하철 탑승을 대기할 때나 승차 후에도 사람들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 위치하도록 교육한다”고 했다.

직선코스 안내에 이어 지하철 승하차 교육까지 마치자 1시간30분이 훌쩍 지났다. 쉬는 시간 없이 줄곧 걸었지만 신비는 지친 기색 없이 즐거워 보였다. 이 훈련사는 “훈련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안내견들에게는 간식이란 보상이 주어지고 산책할 수 있는 놀이 시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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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와 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지하철 탑승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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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이명호 훈련사가 시각장애인 안내견 ‘신비’와 지난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지하철 탑승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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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화부터 안내견 훈련까지, 육성에만 2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삼성의 대표적인 사회적책임(CSR) 활동이다. 올해 31년차를 맞았다. 평소 개를 좋아했던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3년 설립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가 직접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세계에서 기업이 안내견 양성 기관을 세운 사례는 삼성뿐이다.

이 학교에서 안내견 후보 개들은 약 7~8개월에 걸쳐 교육을 받으면서 어엿한 예비 안내견으로 성장한다. 시장과 같은 복잡한 장소,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 곳 등 다양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안내하도록 훈련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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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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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은 8개월이다. 다만 강아지가 안내견이 되는데 걸리는 총 기간은 2년에 이른다. 안내견학교에서 부모견이 새끼를 낳고, 생후 7~8주까지는 부모견이 보살핀다. 강아지들은 이후 1년간 퍼피워킹(안내견 후보 강아지가 일반 가정에서 사회화 훈련을 받는 과정) 자원봉사자와 함께 지내며 사회화를 진행한다.

이때 안내견 기질을 물려줄 수 있는 강아지는 부모견으로 선정해 특별 관리하고, 침착함과 온순함 등 안내견 기질이 보이는 강아지들은 안내견으로 성장하도록 훈련을 진행한다.

퍼피워킹 과정을 마치고 입교해 교육을 받는 동안 예비 안내견들은 중간평가와 최종평가 등을 거친다. 안내견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검증하는 단계다. 시험을 통과하면 시각장애인에게 무상 분양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일반 가정으로 보낸다. 인기가 많아 일반 가정 분양은 대기 기간이 1년 6개월~2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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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안에 부착된 안내견 양성과정 설명 자료. (사진=김응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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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합격률은 약 35%다. 1년에 45~50마리를 훈련하는데 이 가운데 12~15마리가 안내견이 된다. 시각장애인의 ‘눈’ 역할을 맡는 만큼 통과하기 쉽지 않다. 훈련이 중요하지만, 퍼피워킹 단계 사회화 과정과 타고나는 기질 자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교장은 “기질 자체적으로 감정이 널뛰는 강아지들은 훈련을 해도 안내견으로 크기 어렵다”며 “안내견이 될 만한 성격을 가진 강아지를 선별해 사회화하고 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亞 최고 안내견 양성 기관…“사업 확대 최선”

지금은 안내견학교가 삼성의 성공적인 CSR로 인정받고 있지만, 설립 초기만 해도 어려움이 많았다. 영국, 독일, 미국, 일본 등의 안내견학교를 벤치마킹하려 했으나 ‘개를 먹는 나라’라는 인식 때문에 협조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시아에서 최고의 양성 기관으로 성장했다. 일본과 대만에서 삼성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방문하고 있다. 박 교장은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걸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역시 미국 등 안내견 양성 선진국과 인적 교류를 진행하며 더 개선된 교육법을 벤치마킹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안내견 사업에 진정성을 보이면서 더 확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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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안내견 30주년 기념식 행사에 이재용(뒷줄 왼쪽 두 번째)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뒷줄 왼쪽 세 번째) 등이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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