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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증액 아닌 증액 꼼수?···기재부, R&D 예산 분류기준 재편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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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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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연구·개발(R&D) 분야 예산 대폭 확충을 지시하면서 기획재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정부가 일괄 삭감한 4조6000억원을 원상 복구만 해도 내년도 R&D 예산은 31조원이 넘는다. R&D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정부가 강조하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려면 다른 분야에서 예산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재부는 대안으로 R&D 분류 기준 자체를 새로 만들어 증액 폭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21일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최소 2조8000억원(10.6%) 이상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일괄 삭감한 4조6000억원보다 적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대폭 확충’의 취지에는 맞지 않는 규모다.

기재부가 검토하는 것은 ‘R&D 예산 모수 기준’ 변화다. 기재부 관계자는 “R&D 예산 기준을 새롭게 세울 수도 있다”며 “모수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모수에서 비R&D 예산을 거둬내면 내년도 R&D 예산 총액은 (지난해 수준인) 31조1000억원보다 적어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지난해 R&D 예산 31조1000억원 가운데 1조8000억원을 뺀 ‘29조3000억원’이 실질적 R&D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R&D 분류 기준을 새로 설정해 적용하면 기존 R&D 예산에 포함되던 1조8000억원이 R&D 예산에서 빠진다는 의미다. 1조8000억원을 ‘비R&D’ 예산으로 재분류하는 것에 대해 기재부는 “예산편성지침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예를 들어 대학사업 중 학생 일반지원 성격 사업들은 R&D와 비R&D의 경계선상에 있(어서 재분류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R&D 예산 분류법을 개편할 경우 내년도 R&D 예산 총액을 ‘29조3000억원’으로만 편성해도 ‘R&D 예산을 지난해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발표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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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R&D) 예산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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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가 이런 대안을 검토하는 것은 역대급 세수 펑크로 재정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R&D 예산을 대폭 확충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R&D 예산이 대폭 늘어나면 다른 분야 예산을 그만큼 축소해야 할 수도 있다.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현 정부는 내년에도 지출 총량을 최소화하겠다는 기조를 세웠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내년도 재정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27조6000억원(4.2%) 많은 684조4000억원으로 제시했다. 복지지출과 국채이자 등 내년도 법정 의무지출 증가액은 같은 기간 25조1000억원 늘어나게 돼, 이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빼면 사실상 예산안 동결을 목표로 세운 셈이다.

R&D 예산을 확충하더라도 지난해 삭감한 분야 예산이 회복될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우주 등 4개 국가전략기술과 관련한 R&D 예산에 대해 기재부 주도로 심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에 삭감한 R&D 예산 단순 복원은 아니고 R&D 예산 내 재구조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첨단 분야 R&D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정부가 지난해 일괄 삭감한 대학원생 인건비 등이 복구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도 감지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 총학생회가 지난 3월25일~4월3일 대학원생 6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R&D 예산 삭감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KAIST 대학원생의 월수입은 평균 10만원 정도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명호 전국과학기술노조 정책위원장은 “학생들 인건비도 제대로 안 나오는데, 작년에 삭감된 예산이 복원되지 않고 바이오 등 기재부가 관심 있는 새로운 분야로 R&D 예산이 배정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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