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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이란 "악천후에 대통령 헬기 사고" 이스라엘 "표적 삼을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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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당국이 전날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실종됐던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고 20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강경 이슬람 원리주의 노선을 이끌던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란 내부의 권력 다툼, ‘히잡 시위’와 경제난에 의한 민심 이반 현상이 한층 가속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시아파 맹주 역할을 하는 이란 내 동요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 등으로 긴장감이 높아진 중동 정세에 혼란을 가중할 것이란 우려도 이어졌다.

이날 모흐센 만수리 이란 부통령은 X(옛 트위터)를 통해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가 전소한 채 발견됐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고 헬기에는 라이스 대통령와 함께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동아제르바이잔 주지사, 지역 성직자 등 총 9명이 탑승했다.

이란 내각도 이날 오전 성명에서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소식을 밝히면서 "아무런 차질 없이 국정이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날 헬기 추락 사고 직후 이란 당국은 군경을 동원해 밤샘 수색에 나섰고, 수색 착수 15시간 만에 사고 현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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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적신월사가 공개한 헬리콥터 추락 현장.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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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정치·종교의 최종 결정권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 최고지도자는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이 발표되자 5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고향이자 시아파의 최대 성지인 마슈하드에 모였던 친(親) 정부 성향의 이란인들은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통곡했다. 앞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마네이는 이란인들에게 라이시 대통령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고, 이란인들은 수도 테헤란과 마슈하드의 거리에 모여 철야기도를 이어갔다.

사고 헬기는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주(州) 타빌 마을 인근의 울창한 숲 한복판에 추락했다. 수색·구조를 맡은 국제적신월사(IRCS)의 무인기(드론) 촬영 영상을 보면 추락 지점은 화염으로 검게 그을렸고, 헬기의 꼬리 부분은 우거진 수풀 사이에 거꾸로 뒤집혀 박혀있었다. 꼬리 외의 다른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연료 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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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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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준공식 참석 후 귀환길 봉변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동아제르바이잔주에서 열린 키즈-칼리시 댐 준공식에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뒤 타브리즈의 정유공장으로 향하기 위해 해당 헬기에 탑승했다. 사고 지역은 헬기 이륙 직후 갑자기 기상이 악화돼 폭우가 쏟아졌다. 헬기 조종사 출신 항공 전문가 폴 비버는 알자지라에 “헬기는 날씨에 취약하다. 낮은 기온과 구름, 안개 등이 헬기 추락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시 대통령 일행은 헬기 3대에 나눠 탑승했는데, 이륙 30분 만에 대통령이 탄 헬기가 다른 2대의 헬기와의 교신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산세가 험한 디지마르 산악지대에 접어들면서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는 추락했고, 다른 2대에 탑승했던 알리 아크바르 메라비안 에너지 장관과 메흐다드 바즈르파쉬 주택교통부 장관 등은 목적지인 타브리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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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이란 당국은 악천후로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었다. 이란 혁명수비대를 포함한 모든 군·경을 수색 작업에 동원했지만 험한 산세와 짙은 안개, 진흙탕 지형으로 구조 작업이 지연됐다. 실종 12시간이 될 때까지 사고 지점을 정화히 파악하지 못했다. 피르호세인 쿨리반트 IRCS 대표는 이날 오전 이란 국영방송에 “날씨가 매우 춥고, 폭우가 눈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가시거리가 5m도 되지 않는 등 작업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이날 새벽 튀르키예가 지원한 바이락타르 아킨치 드론이 사고 헬기의 잔해로 추정되는 열원을 발견하고, 이란 측에 좌표를 공유한 뒤에야 본격적인 수색이 이뤄졌다. 아킨치 드론에는 첨단 열화상 카메라와 야간 투시 기능이 탑재돼 있다. 이후 한 시간여 만에 추락 장소에 도착한 수색 구조팀은 “상황이 심각하다”며 “시신 중 일부는 불에 심하게 그을려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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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를 태운 헬리콥터가 이란-아제르바이잔 국경 근처에서 이륙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산 노후 헬기, 기체 결함 가능성도



사고가 난 헬기는 벨-212 기종으로, 미국 업체(벨 헬리콥터)가 56년 전인 1968년부터 1998년까지 생산했다. 이란이 사고 헬기를 언제, 어떤 경로로 도입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란의 군용기 대부분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 기종으로 알려졌다. 혁명으로 친미 성향의 팔레비 왕조가 축출된 후 서방과 등을 진 이란은 국제 사회의 제재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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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사고에서 동시에 출발한 헬기 3대 중 라이시 대통령을 태운 헬기만 추락하고 나머지 2대는 무사히 도착한 점 등을 들어 사고 원인이 기기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외신들은 지적했다.



이란 "사고 원인 악천후" 이스라엘 "표적 삼을 이유 없어"



일각에서는 헬기 추락에 대한 '배후설'이 제기됐다. 특히 오랫동안 이란과 적대적인 관계를 이스라엘이 연루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이스라엘 관리는 "이란의 의사 결정은 대통령이나 외무장관이 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이 그들을 표적 삼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척 슈머 미국 상원 원내대표(민주당)도 "이번 추락사고에 '반칙'의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아마드바히디 이란 내무부 장관도 헬기가 "이번 사고는 악천후와 안개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테러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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