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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설암 수술 감췄던 박용진 "낙천 충격, 의젓하게 대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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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떠나는 ‘야당 속 야당’ 박용진, 21대 국회를 말하다



중앙일보

지난 총선 세 번의 경선 끝에 공천 탈락한 박용진 의원은 “아직도 그 일을 돌이켜 본다”며 국회의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혔다. 최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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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박용진 사태’란 말이 있었다. 정당의 공천이 얼마나 기이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세 번의 경선을 치르는 동안 세 번의 페널티를 받았다.

일종의 충격이었을 텐데 국회의원 생활 8년을 마무리하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일상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듯 보였다. 17일엔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자의 인사청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전날까진 김진표 국회의장의 의원외교에 동행했다. 20일부터 의정보고서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지하철 출퇴근 인사를 한다고 한다.

10여 일 후면 여의도를 떠날 그에게 21대 국회에 대한 소회를 묻기 위해 연락했다. 그는 간단명료하게 정리했다. “문제는 아는데 해법은 만들지 않았고, 한계는 알지만 극복하려 하지 못했다.”

Q : 재선 의원이지만 한국 정치판을 관찰한 건 1998년부터다. 21대 국회를 평가한다면.

A : “어쨌든 국회의 원래 기능은 대통령중심제 속에서 견제와 균형이고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건 인정해줘야 한다. 문제는 진영들이 낡고 소모적인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면서도 그냥 거기에 끌려다녔고, 입으론 개혁을 얘기하는데 가죽은커녕 터럭 하나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보·인구·기후 3대 위기에 대해 다 공유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걱정만 늘어놓았다. 제일 결정적인 건 국회의장마다 개헌해야 한다고 얘기했고 모두가 찬성하는데도 불구하고 개헌은 안 됐다는 것이다. 21대 국회도 문제는 아는데 해법은 만들지 않았고, 한계는 알지만 극복하려 하지 못했다. 의원들이 주도할 실력과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경선 세번 치르면서 페널티 세번 받아

Q : 여야간 대화다운 대화를 못했다. 사적 교류도 없다는데.

A : “지금은 양쪽이 만나면 ‘수박이다’ ‘배신자다’ 그러니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그런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한다. 특히나 상대가 높이 평가하는 사람, 상대 진영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의심을 받는다. 당 내부에서도 그렇다. 당 안에서 일단 주류로부터 찍히는 것은 물론이고 기성지지층으로부터도 배척받는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연락을 잘 안 하게 되고, ‘만나면 나에게도 문자 오는 것 아냐’ 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는 민주당 안에서 오랫동안 쓴소리를 해온 사람이다. 20대 때 조응천 의원, 금태섭·김해영 전 의원과 함께 ‘조금박해’로 불렸다. 금·김 전 의원은 21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다. 조응천 의원은 올 총선 국면에서 탈당했다. 결과적으론 민주당 안엔 그만 남았다.

Q : 당 안에서 소수다.

A : “그런데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근거 없이 ‘수박이다’ ‘배신자다’ ‘내부총질러다’ 규정되니 나중엔 ‘이건 진짜 안 된다’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서로 의견이 다르고 혹은 적대하는 사람까지도 만나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정치의 과정이다. 윤심과 명심만 헤아리는 정치가 어떻게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겠느냐.”

Q : 여야 대립이 극심한듯하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여야 모두의 비대위원장을 지낼 수 있었다. 정서적 차이가 크지 정책적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A : “그렇다. 여야 간에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공약을 헤아려보면 70% 이상이 같다는 거 아니냐. 김종인 위원장은 어떻게 보면 개인적 능수능란함을 갖춘 분인데 지금의 상황은 개인적 능수능란함으로 극복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상대 진영에 호감을 사면 소속 진영엔 반감을 산다. 진영 내부에서 다양함을 질식시키는, 사나운 정치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도 훨씬 문제다.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싹을 잘라버리고 배척하면 점점 더 곪아갈 수밖에 없다.”

Q : 정당민주화가 이뤄졌다고 하면서도 소수의 극성 당원들이 당을 좌지우지하는 건 아이러니다.

A : “2000년 들어 3김 정치 타파와 제왕적 총재제도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게 진성당원 제도, 상향식 공천 이런 것들이다. 어떤 제도도 20년 쯤 지나면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제 소수 강성 당원이 당심을 대변하고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드러났고 이런 과정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이중투표하고 위장전입하고 유령당원이 횡행하는 문제가 있어왔다. 이런 일들이 PC나 모바일투표로 진행되기 때문에 검증조차 가능하지 않다. 이걸 바로잡는 게 필요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면 위탁해야 한다. 투표 기간을 한 일주일 정도 두더라도 직접투표를 통해 검증가능한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미국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많은 나라가 직접 투표를 한다. 그러나 문제점이 있으니 거꾸로 가거나 투표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거나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더 확장적으로 당원으로 가고, 더 당원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돈 1000원만 내면 권리당원으로 해준다. 더 열심히 참여한 사람, 의견을 많이 내고 교육에 참여한 사람에게 진성당원, 이런 걸 부여해야 한다.”

중앙일보

박용진 의원이 지난 3월 전북특별자치도 의회에서 경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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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원 자신부터가 소수 강성 당원의 위력을 맛본 사람이다. 마지막 경선에선 전국 권리당원 투표까지 치렀다.

낙천 충격 여전, 당시 설암수술도 감춰

Q : 낙천의 충격에선 벗어났나.

A : “아니다. 사실은 아직도 가끔 그 일을 돌이켜본다. 내 문제나 이번에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석연치 못했던 문제가 민주당이나 한국 정치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이었으면 좋겠다. 그 사이 막 생각했다. ‘의젓하게 대응해야 된다, 당한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이게 문제가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나중에 이걸 개선할 수 있다’고 말이다. 경선 과정에서 설암수술을 했는데 이를 감추고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1주일 입원했고, 의료진이 “재발 위험이 있으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술 먹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Q : 정작 박 의원 지역구에선 논란 끝에 공천된 민주당 후보가 11%포인트차로 승리했다.

A : “우리 지역의 유권자들이, 저도 그랬지만, 감정을 꾹꾹 눌러가면서 합리적 선택을 했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실망과 그에 대한 심판이 유권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거다. 20% 유권자가 다른 걸 선택하는 모습도 보여줬지만 어쨌든 민주당 후보를 선택하는 결과를 만들어준 거다.”(21대 총선에서 박 의원은 30%포인트 가까운 차로 이겼다)

Q : 총선 압승으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은 견고해 보인다.

A :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안 한다 하더라도 과제는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시간은 박용진 편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하고 이 문제를 얘기 하려고 그런다. 당장 민주당 안에서 ‘이대로가 좋다’고 얘기하는 목소리가 크더라도 ‘그렇지 않다. 이런 것은 바꿔가야죠’라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보나.

A : “알 수 없다. 국민의 마음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재명 대표의 과제는 이제 분명한 것 같다. 0.7%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진 게 내 편을 똘똘 뭉치게 못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윤석열을 찍은 사람들을 더 끌어오지 못해서인지 판단의 문제인데, 이번 우리 민주당 공천의 과정을 윤 대통령이 이준석·나경원·안철수·유승민 등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던 과정과 비교했을 때, 윤 대통령의 결과는 패배였다. 얼마나 포용하고 확장하느냐의 문제라고 저는 본다. 사실은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그렇게 하는 게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진심으로 조언하는 바다.”

Q : 비판했던 조국 전 장관이 대표가 되어 여의도에 입성한다.

A : “어쩌겠냐. 국민의 선택인데. 조국 대표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해왔고 그것 때문에 저도 당내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지만 선거를 통해 국민이 조 대표에게 정치적인 역할과 기회를 만들어준 건 그거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역시도 조 대표와 대화가 가능해야 하고, 조 대표도 본인을 비판했던 사람들의 생각과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한다.”

Q : 22대 국회가 더 최악일 거란 예상에 대해선.

A : “적어도 국회의원이 됐으면 본인의 생각, 소신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주저는 없어야 된다고 본다. 거기에 다른 정치적 책임도 감내할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한다. 늘 모든 국회가 여러 우려 속에 출발했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고 정치활동을 하는 분들은 늘 있었다. 22대 국회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부분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는 이제 원외 생활을 시작한다. 국회의원 생활을 ‘매일매일 단타매매’에 비유한 그는 “대한민국이 위기이고 정치가 30년 뒤를 준비해야 하는데 국회의원이 아닐 때 모색해보고 고민을 모아 봐야겠다”고 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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