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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전력망 기업 호황 비결은?…북미 전력망 교체에 ‘데이터센터 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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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된 듯 ‘짜릿’…‘슈퍼 사이클’ 돈벼락 [스페셜리포트]


매경이코노미

충북 청주에 위치한 LS일렉트릭 스마트공장 전경. (LS일렉트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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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기기, 전력망 등 전력 인프라 기업들이 호황을 누리는 배경은 뭘까.

첫째 북미를 중심으로 변압기를 비롯한 전력기기 수주가 급증한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기업이나 가정에 보내려면 그에 맞게 전압을 바꿔주는 변압기가 필수다. 통상 30년으로 여겨지는 노후 전력망 교체 수기가 도래하면서 미국 정부는 고용량 전력망 설치, 시스템 현대화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 변압기의 70%는 교체 시점인 25~30여년 전에 설치됐다.

때마침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법(IIJA) 등을 시행한 데다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미국으로 복귀하는 ‘리쇼어링’ 바람이 불면서 전력기기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하신 몸’이 됐다. 2021년 발효된 IIJA는 향후 10년간 철도, 도로, 상수도, 전력망 등 사회기반시설(SOC)에 1조2000억달러, 우리 돈으로 1650조원을 투자해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이 목표다. IRA와 함께 ‘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법도 전 세계 설비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역할을 했다. 이들 법이 발효된 이후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와 함께 전력 소비량이 높은 반도체, 전기차 제조시설 유치에 따라 송배전 인프라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를 눈여겨본 국내 전력 인프라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해 변압기 초호황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최대 60%에 이르는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마련했고 효성중공업도 미쓰비시에서 테네시주 공장을 사들였다. HD현대일렉트릭의 미국 전력 설비 수주액은 2021년 3억9000만달러(약 5280억원)에서 지난해 17억8000만달러(약 2조4101억원)로 네 배 이상 늘었다.

LS일렉트릭은 늘어나는 북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텍사스에 첫 생산 거점을 건설 중이다. 지난해 텍사스주 배스트롭에 4만6000㎡ 넓이의 토지와 부대시설을 매입해 생산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약 1746억원 규모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 배전 시스템 공급·유지보수 계약에 이어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전력 기자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면서 LS일렉트릭의 해외 매출 비중은 2020년 24%에서 지난해 36%, 올 1분기 43%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둘째 전 세계 주요국에서 태양광, 풍력 등을 쓰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우후죽순 생기는 것도 변압기 시장 호황에 한몫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42.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재생에너지지침(RED)이 만들어졌다. 이 여파로 친환경 풍력발전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전력망 인프라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호황을 맞은 모습이다.

중동 지역 전력기기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석유화학 플랜트 증설이 이어지는 데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덕분에 글로벌 시장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오면서 기술력을 높인 국내 전력기기 업체 주문이 쏟아지는 모습이다.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망 투자 규모는 2020년 2350억달러에서 2030년 5320억달러, 2050년 6360억달러(약 828조원)로 증가할 전망이다. 사실상 글로벌 전력망업계가 ‘슈퍼 사이클’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셋째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열풍도 영향을 미쳤다.

AI 시스템을 가동하려면 막대한 전력을 사용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이 필수다. AI 활용 기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초고압 변압기, 배전반 등 전력 인프라, 시스템 수요가 덩달아 급증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오픈AI의 생성형 AI 챗GPT-3에는 1만여개에 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용되는데, 1750억개의 매개변수가 있는 챗GPT-3 모델을 한 번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전력은 시간당 1.3GW에 달한다. 이는 한국에서 1분간 소비하는 전력 총량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검색 작업을 수행하는 데도 AI가 일반 검색 대비 5배가량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서버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실시간으로 서버를 냉각하는 시스템에도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2023~2028년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연평균 전력 수요 증가율이 11% 수준이지만, 여기에 AI 서버를 적용하면 증가율이 연평균 26~36%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덕분에 HD현대일렉트릭에는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납품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강달러 추세도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전력기기 업체들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금을 주로 달러로 받는 만큼 환차익에 따른 실적 개선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 수출입무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형 변압기 수출액은 약 6억8000만달러로 2022년(약 3억8000만달러) 대비 78%가량 증가했다. 2017년 이후 최대 규모다. 지난해 기준 HD현대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의 전체 전력기기 사업 매출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북미의 노후 전력망 교체를 시작으로 유럽 재생에너지 확대, 생성형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초고압부터 중저압 전력기기에 이르기까지 전 부문 투자가 지속되고 있다. 전력 인프라 기업이 호황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 분석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8호 (2024.05.08~2024.05.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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