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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팬데믹이 반복되는 근미래의 ‘섬뜩한 풍경’[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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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격리된 변종 니파바이러스 확진자 247

인류 최후 숙주가 죽자 안도하는 사람들

‘방역 제일주의’ 세계질병센터의 숨막히는 감시

경향신문

‘247의 모든 것’ 김희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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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의 모든 것

김희선 지음|은행나무 |224쪽 |1만6800원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이자 인류 최후의 숙주였던 247이 죽었다. 세계질병센터(WCDC)에 올라온 공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고, 긴급재난 문자를 통해 한 번 더 선포됐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확진자 넘버 247은 우주선을 타고 인공위성으로 격리된 상태였다. 우주선이 하늘로 발사되던 순간, 사람들은 우주선이 공중에서 폭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우주선이 폭발하고 247의 시체까지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바이러스만은 살아남아 바람을 타고 전파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주선이 무사히 지구를 벗어나자 사람들은 완벽한 격리에 환호했다. 얼마 후, WCDC는 그가 탄 인공위성에서 더는 생체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히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그의 시신이 실려 있을 인공위성은 우주 멀리 소거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김희선 작가의 신작 <247의 모든 것>은 247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그의 죽음 이후, 소설 속 ‘기록자’는 그가 해열제를 몰래 복용한 채 세상을 활보하고 다닌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확진자라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기록자’는 그의 모든 것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가 일했던 축산연구소가 있던 마을의 한 주민은 247이 돼지와 대화를 나누던 미친 사람이라고 증언하며 바이러스를 이용해 인간을 몰살시키려 했다고 추측한다. 초등학교 동창과 교사는 그가 어린 시절 학교에 실수로 들어온 박쥐를 만졌을 때부터 감염이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다른 친구는 그가 대학 시절 유학했던 열대지방의 한 나라에서 야생 과일박쥐와 접촉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고 짐작한다. 소수 의견이지만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으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리라는 주장도 있다. ‘기록자’는 불법 해열제 소지 혐의로 247을 신고한 신고자와 그에게 불법 해열제를 제공한 약사도 만난다. 여기에 변종 니파바이러스로 시위대가 집단 사망한 사건이 포개지면서 247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새로운 진실을 향해 간다.

<247의 모든 것>은 각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며 팬데믹이 반복되는 근미래의 사회를 그려낸 작품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후일담이기도 하다. 선제 대응을 통해 세계는 한층 안전해질 수 있다는 논리 하에 통제와 격리가 일상화된 가상의 미래는 코로나19를 거쳐온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코로나19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전염병 관리 센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그 일환으로 WCDC가 세워진다. WCDC는 국가권력보다 강한 막강한 통제력을 손에 쥐게 된다. 바이러스 보균자를 찾기 위한 열 감지 드론이 하늘을 떠다니고 발열자 색출과 격리는 일상이 된다. 그러나 열을 감추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급기야 해열제까지 금지 약물로 지정되고 마약류보다 더 깐깐하게 관리된다. 과거 국가 권력이 전화를 도청하며 폭탄, 폭파, 테러, 조끼, 돌진 등의 단어가 나오는 대화를 수집했던 것처럼 WCDC는 열, 사제 알약, 불법, 오한, 위반 등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대화를 모은다.

반복되는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은 WCDC의 ‘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른다. 공동체를 이끄는 최상위의 윤리는 방역이 되고, 타인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야만적인 행위로 금기시된다. 넘어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려는 본능적인 행동도 자기 검열로 머뭇거리는 사회. 소설의 한 등장인물은 “저 사람을 붙잡아 일으켜줘야 하는 걸까,…결국 그를 돕기로 결심하고 주머니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냈어요”라면서도 “쓸데없는 친절을 베푸는 대신 서로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채 서 있는 게 오히려 낫다는 걸 잠시 잊었다”고 반성한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타인과 대화했던 과거에 대해서는 “입과 코를 드러낸 자들은 마치 벌거벗은 것” 같았다며 “그런 모습 자체가 자기들이 나체인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야만인을 연상케 했다”고 묘사한다.

사르트르는 주체를 대상화시키고 사물화시킨다는 점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근미래의 철저한 방역 사회에서는 사르트르의 고뇌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알고 보면 타인은 지옥도 뭣도 아니다. 이런 철저한 방역이 계속 유지되고 질병이 컨트롤 된다면 말이다. 이런 세상에서 타인은 있는지 없는지도 잘 알 수 없는 존재다. 당국은 언제나 철저하고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다.”

경향신문

‘247의 모든 것’. 은행나무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인수공통감염병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공장식 축산업을 겨냥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공장식 축산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되면서 가축들이 감염병에 취약해지고 확산 또한 쉬워졌다는 분석들이 제기된 바 있다. 소설에는 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등장하는데, 니파바이러스는 실재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1998년 말레이시아 니파 지역의 돼지 농가에서 처음 발생해 약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후에도 국지적으로 발병하고 있다.

소설은 통제와 격리, 위생이 강조되는 지상과 지상의 안녕을 위해 “전염병이 돌 때마다 병을 퍼뜨린 동물을 찾아내고 책임을 덮어씌우고 살처분” 하는 실태에 대해 말한다. “지상이라는 표피 아래엔 어디나 저런 지옥이 펼쳐져 있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기만 한 지표를 한 꺼풀만 들추면 울부짖으며 썩어가는 돼지, 염소, 소, 양, 닭이 우글우글하다고요…그거 알아요? 돼지를 땅에 묻으면 부패가 일어나고 마침내 펑 터져서 내부 장기와 피, 오물, 체액, 내장,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을요. 만약 수만 마리의 돼지를 한 번에 묻으면 그 많은 돼지의 몸이 한꺼번에 펑펑펑 터지겠지요. 상상해보라고요. 그 끔찍한 광경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학자들은 수년 내에 또 다른 팬데믹이 도래할 위험이 크다고 예견했다. 다시 공항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음식점의 칸막이가 없어지면서 불과 몇 년 전이었던 팬데믹 시기는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지구 어딘가에서 전염병이 유행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또다시 팬데믹이 시작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소설은 책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를 환기하며 공중보건을 위한 통제와 검열, 개인을 희생시키는 시스템, 안전을 위한 동물 살처분 등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에 대해 묻는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인류는 팬데믹을 초래했던 현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성찰들을 쏟아냈다. 소설은 벌써 잊히고 있는 그 때의 성찰들을 돌아보게 하면서 인류가 새롭게 서 있어야 할 윤리의 지점들을 고민하게 한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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